미래의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청소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의 중·고등학생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참신한 열정과 도전을 통해 문학으로의 꿈 실현에 역할 하고자 합니다.
제5회 김유정청소년문학상 대상 김수아.정채민 선정
제5회 김유정청소년문학상 공모에서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김수아 양과 덕이중학교 3학년 정채민 양이 각각 운문과 산문부문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G1방송과 김유정기념사업회가 춘천 출신의 한국근대문학 대표작가인 김유정 소설가를 기리기 위해 진행한 이번 공모는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작품을 접수했습니다.
춘천 금병예술인촌 '문학의뜰' 전시관에서 열린 작품 심사에는 전상국 소설가와 박종숙 수필가 등 국내 중견 문인들이 참가했습니다.
2023-08-10 홍서표 기자 hsp@g1tv.co.kr
제5회 김유정청소년문학상 대상에 김수아(고양예고 2년·운문 부문), 정채민(경기 고양 덕이중 3년·산문 부문) 학생이 선정됐다. 김유정기념사업회(이사장 김금분)은 10일 춘천 ‘전상국 문학의뜰’에서 심사위원회를 열고 이처럼 결정했다.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진행된 공모전에는 436명의 작품 1224편이 접수됐다. 심사위원들은 김수아 학생의 시 ‘은수는 자꾸 길어지기에’에 대해 “최종에 오른 작품 모두 완성도 면에서 훌륭했는데 개성적인 자기만의 목소리가 가장 잘 구현된 작품에 눈길이 갔다”고, 정채민 학생의 산문 ‘발 없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 발상과 구성은 물론 캐릭터 보여주기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 중3 학생이 쓴 작품으로서 단연 돋보였다”고 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50만원과 상장이 전달되며 대상 후보작을 함께 엮은 작품집도 발간될 예정이다. 김진형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제5회 김유정 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제5회 김유정 청소년문학상 산문 심사평
응모작 수준이 대체로 높았다. 이야기 발상과 구성은 물론 캐릭터 보여주기에도 모두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처리에서 보여줘야 할 글쓰기의 신명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또한 이야기 미학에서의 핵인 문장에서 글쓴이의 신명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산문 '대상'에 발없는 세상은 중3학생이 쓴 작품으로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밝힌다. 심사위원 전상국(소설가)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번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수준을 가리기 힘들었다. 대체로 이야기의 전개를 무리없이 잘 이끌어 나갔으나 치밀한 구성, 주제의미 부여가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몇몇 작품은 문단 나누기를 하지 않아 기본이 안되어 보였다. 대체로 이야기의 소재가 다양하고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분야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돋보였다. 특히 최종적으로 오른 장원 작품 <발 없는 세상>은 주변의 친구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중학생으로 그동안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후보작으로 오른 다른 작품도 문장력이나 작품의 구성 이야기의 전개가 모두 우수하였고 특히 최종적으로 오른 <흐르는 물> <장마>는 끝까지 선정을 놓고 고민하였다. 이번에 선정되지 못한 분들도 더욱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박종숙(수필가)
제5회 청소년문학상 '산문부문'이 전국에서 200여편이 넘게 접수 되었다. 내게 배정된 110편으로 예심을 겸해 10여편의 작품을 우선 선별했다. 쓰는 자의 고통과 아름다운 창작혼을 생각하니 단 한편, 한 글자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꼬박 2박3일에 거쳐 반복해 읽으면서 겨우 10편을 추렸다. 중학생 고등학생을 모두 포함해 검토하면서 두 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작품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의 지식과 철학, 행동반경, 감수성 등의 풍부함에서 문단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사고력의 향상이 곧 미래의 구체적 자산과 연결 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희망도 상상 되었다. 다음은 더러 더러 섞여 있는 중학생들의 작품이 우수 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들과 견주어도 구분이 안될 만큼의 성숙함에 찬탄과 응원을 보낸다. 추려진 10편 기준은 대부분 단편소설 형식이었기에, 스토리 전개와 주제의 선명함, 주인공의 성격 문체 묘사, 예술성에 두었다. 대부분의 스토리가 학령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중에는 기성세대의 눈으로 이야기를 우수하게 전개한 작품도 있었다. 내가 읽었던 모든 작품에 사랑과 감사함을 표하면서 예심에 선정 된 10편에 무한 가능성을 점친다. 전상국 소설가 박종숙 전 강원문협 회장님과 논의를 거쳐 최종 7편을 선정하는 일에 보람과 자긍심도 가져본다. 아울러 최종 대상 후보작으로 정채민(덕이중학교) 발없는 세상, 노의현(신봉고등학교) 물이 흐느는 곳,김수민(흥덕고등학교) 3편이 올랐다. 심사위원 3명이 집중 논의한 결과 정채민의 발없는 세상을 뽑았다. 기성 작가 못지 않은 표현력, 문장력이 중학생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훌륭했다. 대한민국 문단의 기둥이 될 것 같아 거듭 기쁘다. 심사위원 지소현(수필가)
제5회 김유정 청소년문학상 운문 심사평
응모된 작품들은 여러가지 소재를 다양한 어법으로 표출하였다. 청소년들의 일상, '거울'과 같은 시적 상징 가족소재, 인문학적 상상력 등 다양한 소재를 형상화 하였다. 우선 뻔한 비유, 상투성 강한 작품과 기성시인들을 답습한 시를 걸러냈다. 편지투나 산문투의 시편들도 좋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청소년들의 삶과 밀찬된 언어, 시의 장르적 특성을 잘 지키며 완성도가 높은 시들을 선정하였다. 최종으로 오른 작품들은 완성도면에서 모두 훌륭했다. 그 중에서 개성적인 자기만의 목소리가 가장 잘 구현된 작품에 눈길이 갔다. 선정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이재훈(시인)
응모된 작품들은 학교 안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들, 가령 가족, 가난한 삶, 힘겨은 노동의 세계 등 소재의 면에서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소한 일상의 스케치로 그치거나 서정적 소재를 감상적으로 처리하는 데 머무른 작품들이 많았다. 일상의 일차원적인 접금, 상투적인 구분, 소박한 감상에 지배적인 작품들은 일차적으로 거를 수 밖에 없었다.공허한 호소나 멋부린 말은 버리고 대상에 밀착하고 시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감정은 이미지에 연결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 삶이나 일상의 단면은 예리하게 포착해서 개성적인 감각으로 풀어내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심사하는 내내 기쁨과 설렘으로 작품들을 읽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아쉽게 당선에 들지 못한 투고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신철규(시인)
소재의 다양성과 생명에 대한 폭넓은 관심, 그리고 응모작이 많은 점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희망적임을 생각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소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의 불안을 표현한 작품을 대하며 어른들의 책임감도 무겁게 느꼈다. 김유정을 이어 이나라의 큰 별이 태어나는 의미 깊은 행사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송경애(시인)
제5회 김유정 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
운문 대상 : 김수아(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은수는 자꾸 길어지기에
파스를 사다가
늘어나는 은수가 생각났다
체육복 반바지 밑으로 보이는 은수의 무릎에
얼마나 많은 서랍이 있었는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조한 구름 냄새가 났다
그날 은수의 서랍을 열어본
그늘 밑 사람들은 다 길어지고 그림자도 길어지고
나도 길어지고
길어진 몸으로 서랍 속을 헤매다
모두가 길어졌을 때 은수는 아마도
버드나무의 그림자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은수의 등을 따라서 더 무성한 것들이
언제나
긴 것 뒤에는 더 긴 것들이
공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에 빠지도록 휘어진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
막힘 없이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뿌리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가슴께에 파스를 붙였다
나의 서랍은
여기에 있었나 무언가 쏟아지려는 듯 덜컥거린다
뻐근하고 시리다
비가 오는 날이면 버드나무에서는 빛이 나곤 했는데
썩은 줄기 안쪽에서 은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영원히 모를 일이었다
산문 대상 : 정채민(덕이중학교 3)
발 없는 세상
개미는 자신의 무게 50배 이상을 들 수 있다. 언젠가 윤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학교로 찾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은 뻔한 질문을 했다. 그 학생이 실종된, 교우관계는, 평소에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 등의 질문들. 한 귀로 흘렸을 뿐이다.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은 평소에 친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던 것이다. 사실 이외의 질문들에도 모두 모른다고 답했다.
의심 가득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교실 밖으로 나왔다. 정말 긴장이 되지 않아, 그리고 걱정하지 마. 너 말대로 다 모른다고 대답했어. 문자를 보내는 대신 작게 중얼거렸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말이 윤에게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이 실종된 지 며칠, 학교는 아직 어수선했다. 천재니, 영재니 하던 아이였으니 그럴 만했다. 단순 가출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윤이 실종된 날은 마침 시험이 끝난 날이었고 시험을 망쳤다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아이가 있었다고 했다. 귀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윤이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다. 윤의 쌍둥이는 암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학교에 찾아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말할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는 습관처럼 굴다리로 향했다.
굴다리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위로는 기찻길이 있었고, 아래로는 물길이 흘렀다. 하수도인 듯했으나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굴다리에서는 유독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잘 보였다. 높은 건물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보는 것이, 내가 하루를 끝내는 마지막 일과였다. 그리고 그 일과를 함께 보내던 윤은 여기 없다.
윤과 처음 대화를 한 그날, 윤은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하고 있었다. 윤이 던진 돌들이 나에게 물을 튀기고 있었다. 나처럼 윤 역시 여러 번 그곳에 있었을 테지만 서로를 인식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윤에게 자꾸 물이 튀니 물수제비를 그만하라고 말했다. 윤은 같이 해, 하며 납작한 돌을 건넸다. 방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묻자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가르쳐줄게, 했다. 엄지랑 중지로 돌 쥐어봐, 너무 힘주지 말고, 자세 살짝 낮춰서 던지면 돼. 수면에 돌이 두 번 튕겼다가 가라앉았다. 윤이 난 일곱 번도 된다, 하며 자랑하듯 돌을 던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돌은 여덟 번을 튕기고 가라앉았다. 최대기록이라고 좋아하는 윤을 보니 웃음이 났다. 물이 튄다는 불만도 잊은 채 웃었다. 그 이후에 우리는 자주 만났다. 하교 후에 굴다리에서 이야기나 물수제비를 하다가 윤의 쌍둥이 형이 그를 데리러 오면 헤어지는 식으로.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는 헤어졌다. 어디서 뭐 하다가 왔느냐는 질문과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아쉽다는 목소리로 잘 가라고 했지만, 연락처를 교환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윤은 남들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을 아무 기록이 남지 않는 그곳에서 한 것 같다.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털어놓았다.
굴다리에서는 멀리 공원이 하나 보였는데 그곳에서는 항상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축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윤은 아깝다는 둥 저건 내가 더 잘하겠다는 둥 투덜거렸다. 축구를 잘하느냐고 묻는 내게 당연하지, 공부를 안 했으면 선수가 됐을 거야, 했다. 윤은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 공부라며 공부는 주변의 사람을, 자신의 쌍둥이까지도 미워하게 만들기에 싫어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길 또한 공부이기 때문에 절대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는 윤의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모습과 너무 달라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윤이 공부하기가 싫다고 말할 줄은,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축구를 하며 흘리는 땀과 받는 햇빛을 동경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어른이 되면, 이었다. 어른이 되면 피어싱도 하고 어깨에 타투도 할 거야. 그림 하나, 문장 하나. 어른이 되면 혼자 축구를 보러 갈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말은 나로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피어싱은 같이할까. 문신은 좀 무서워, 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축구는 지금도 보러 갈 수 있지 않으냐 묻자, 윤은 엄마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해준 후 윤에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수제비도, 이야기도 하지 않는 날은 가만히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과자 부스러기를 놓고 언제쯤 개미가 찾아오나 관찰하고 있었다. 굴다리에는 그러지 않아도 개미가 많았지만, 윤은 더 많이 개미가 몰리기를 바랐다. 대게 윤은 언제나 몸을 움직였는데, 그때만큼은 손끝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개미가 밟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꽤 재밌었던 것 같다. 신발 사이로 바쁘게 지나가던 개미들과 그러지 못해 밟혀 죽은 개미들. 밟혀 죽은 개미들을 동정하다 못해 묻어줘야겠다고 말하던 윤이 떠올랐다. 그러나 한 번도 윤이 개미를 묻어준 적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개미를 묻어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윤이 떠나기 며칠 전, 나에게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난 한사코 안 간다며 거절했고 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넌 항상 나를 이해한다고 했잖아, 왜 같이 안 가겠다는 거야?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의기소침해진 태도로 묻는 윤에게 나는 엄마 못 떠나.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윤이 묻자 그제야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생 땐가, 엄마 말 어기려고 라면 끓여 먹다가 화상 입은 적 있어. 그때 다친 나보다 엄마가 더 많이 울었어. 그냥, 그 이후로 엄마 말 어긴 적 없어. 좀 안 좋게 기억이 남았나 봐. 윤은 화상 흉터가 아직 남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허리 부근의 주먹만 한 흉터를 보여주었다. 필통에서 사인펜을 꺼낸 윤이 흉터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슨 그림인지는 비밀. 그림 그리기를 마치자, 윤은 그렇게 말했다. 집에 돌아가 거울을 봤을 때 내 등에는 날개 달린 개미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살짝 징그럽긴 하지만 적어도 날개 달린 개미는 밟혀 죽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밟혀 죽지 말라는 윤의 마지막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굴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척 시끄러웠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시끄러운 생각들이 기차에 올라타기라도 한 듯 소음과 함께 멀어졌다. 납작한 돌을 주워 땅바닥에 개미 그림을 그렸다. 윤이 그려준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었지만, 형편없었다. 해가 가장 높은 빌딩 위에 걸려 있었다. 슬슬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떠난다면 하고 싶은 일에 관해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말은 할 수 있으니까. 윤은 지금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전부 할 것이라고 했다. 축구, 피어싱, 타투 그런 것들을. 원래 계획을 몇 년 앞당기는 것뿐이라고,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너는 뭘 할 거냐고 묻는 윤에게 나는 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힘들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거. 예를 들면 저기 빌딩 옥상으로. 그렇게 말하며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빌딩을 가리켰다. 저기에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 방 말고 모든 세상이 사라지면 좋겠어. 이런 부분에서 참 우리는 다른 것 같다고, 함께 웃었다.
내가 윤에게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윤에게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고 고백했을 때, 그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을 때, 윤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싫어하는 사람을 왜 신경 써. 윤의 말을 듣고 나는 실감했다. 윤과 나의 차이를. 윤은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전부 해내는 사람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고 모든 것을 이뤄냈다. 내가 누워서 공상하는 시간에 걷고 뛰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윤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나는 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를 시샘했다. 하지만 내 모순적인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 윤을 멀리할 때면 윤이 항상 먼저 다가와 주었다. 나에게 꿈이 생겼을 때 한 치의 의심 없이 응원해 주었다. 나에 관해 잘 모를 텐데도. 용기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윤에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윤이 사라진, 그날, 윤은 유독 늦게 굴다리를 찾았다. 입술이 터서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봤다. 내가 던진 돌이 여섯 번 튕기고 가라앉은 날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 인제 간다. 그렇게 말하는 윤의 얼굴은 여태껏 본 얼굴 중 가장 후련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만약 어른들이 나 찾으면 계속 내 생각해. 그럼 긴장 안 될 거야. 머릿속으로 내가 던지는 물수제비를 떠올려. 내 최대기록 여덟 번인 거 알지? 윤이 내 손에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잘 있으라고 말할 때까지도 나는 가만히 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윤이 정말로 떠났단 걸 깨달았을 때, 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이제야 후회한다. 목적지 정도는 알아둘걸. 절대로 자신과 했던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 달라고, 윤이 마지막으로 부탁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유라도 물을걸. 나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그게 그날 내가 했던 유일한 말이었다. 윤의 가족들은 그가 실종된 것이라고 말한다. 절대 가출할 아이가 아니라며, 다시 씨씨티브이와 동선을 잘 살펴보라고 경찰들을 재촉한다는 게 소문이었다. 윤이 했던 농담이 기억난다. 그거 아냐, 밟혀 죽지 않으려면 도망가야 해. 아무리 50배의 힘을 낸다고 해도 개미가 신발보다 셀 수는 없으니까. 그게 농담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윤이 어떤 커다란 발을 피해 도망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간 곳에서는 축구를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왕이면 피어싱도 하고 왔으면 좋겠다. 아니, 돌아 오지 않아도 괜찮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걸음을 떼었다. 돌아본 곳에는 개미가 몸이 뒤집힌 채로 팔다리를 바둥거리고 있었다. 금세 몸을 뒤집은 개미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날개를 다친 듯, 물수제비 튀기는 것처럼. 퐁, 퐁, 퐁. 날아오른 개미는 어딘가로 떠났다. 해가 져 어두워진 굴다리는 낮과 다르게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름이 끝나가는 건지 쌀쌀한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밟혀 죽을지도 몰라. 발은 어디에나 있었다.
빠르게 도망가야 하는데, 아직 나는 여기에 있다.
윤이 사라진 다음 날, 꾼 꿈속에서 나와 윤은 개미만큼 작아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발이 없었다. 우리는 곧 굴다리를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발 없이 축구를 했다. 이상하게 힘들지도 숨이 차지도 않았다. 우리가 작아졌기 때문에 공원이 훨씬 넓어졌으므로 우리는 자유로웠다. 꿈에서 깨고 난 후 오랫동안 그것을 잊지 못했다. 윤은 발에 쫓겨 어딘가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발 없는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모험을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