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60주년 전상국 작가 인터뷰
12년만에 소설집 ‘굿’ 출간
고향 홍천 배경 분단문학 등 9편
김유정·황순원 작가 오마주도
“열살 때 한국전쟁 참상 각인
분단 문제 매듭짓고 싶어 집필
글 쓰는 신명의 흔적 찾기를”
▲ 60년간 소설과 동행해 온 전상국 소설가를 그의 집필실 ‘아베의 가족’에서 만났다. 83세인 작가는 소설집 ‘굿’에 대해 “잔불 살리듯 공들여 마지막 소설집을 묶었다”고 했다.
전상국의 소설은 시대를 관통한다. 열살 때 각인된 분단의 참상은 마치 ‘악령’처럼 떠나지 않았고, 억눌린 인간의 폭력성이 담긴 적나라한 작품이 됐다. 그 증오의 연대기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전상국 작가가 12년만에 소설집 ‘굿’을 펴냈다. 시적인 문체를 갖고 있으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절제미의 응축이다. 어감을 살리는 문장도 독보적이다. 소설가 김유정·황순원을 오마주 한 ‘봄봄하다’, ‘가을하다’를 비롯해 ‘오래된 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등 9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마지막에 실린 중편 ‘굿’은 전상국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듯한 예감이다. 한국전쟁이 낳은 증오와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절박한 소명의식이 발현된다. 소설집 속 ‘조롱골 우리집’, ‘저녁노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굿’의 배경은 춘천 북산면 부귀리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고향인 홍천 내촌면 물걸리 이야기다. 부귀리에 홍천 곳곳의 지명을 절묘하게 섞어놓았다. 부귀리는 일부 구간이 3·8선 이북에 있어 한국전쟁 중 수복한 지역이다. 소양호만 건너면 내촌면과 인접한 홍천 두촌면과 맞닿아 있다. 최근 집필실 ‘아베의 가족’에서 만난 전상국 작가는 자신의 소설론을 펼치면서, 적대감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 대한 심정을 토로했다. 잠시 머물다 나올 생각으로 들렀던 집필실이었지만 알싸한 생강차 향기와 굵직한 입담은 한국인이 지나온 아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소설 ‘굿’의 주요 내용과 함께 작가와 나눈 대화를 싣는다.
-오랜만의 소설집이다.
“김유정문학촌 일을 끝내면서 쓴 소설들이다. 전업작가는 아니었지만 글 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지난해 몸이 많이 아파서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 소설집이라고 생각하고,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잔불 살리듯 공을 들였다.”
-중점적으로 담은 부분은.
“지금까지 써온 분단문제다. 이전에 문제 제기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매듭짓고 싶었다. 동질이 이질화되는 분단, 가해와 피해, 악순환의 결과가 우리 사회에 악령처럼 남아있다. 섣부른 두 개의 이념 아래 진정한 아버지들이 사라졌다. 정치인을 아버지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들의 잘못을 생각한다. 어렸을 때의 악령은 지금도 내 안에 살아있다.”
-분단의식에 대해 더 이야기 한다면.
“6·25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고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와 만난 적이 있는데 금방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나라에서 전쟁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것이 무서웠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벌인 세계에서도 드문 비극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산다.”
부귀리학교 교장인 ‘나’의 기억속에 부귀리 인민위원장을 역임했던 ‘최용호’는 마을 사람들의 쇠스랑에 찔려 죽었다. 그런데 67년 뒤 살아돌아왔다. 말과 행동 기억까지 모두 똑같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상황. 사실 그는 최용호의 아들 ‘최준성’이었다. 준성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아버지의 혼령에 접신한 듯 연극을 펼치며 외면하려 했던 기억을 꺼낸다. ‘빨갱이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연좌제의 굴레였다. “돌이켜보면 다 피해잡니다. (중략) 미워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래가지곤 미래가 없어요.”
-작품 속 분단문제처럼 양극화와 대립도 심해지고 있다.
“부권(父權)이 이념에 의해 상실돼 맥을 못쓰게 됐다. 정치가가 될 만한 사람은 많았지만 정치판에 들어가면 모두 성공한 ‘악’이 됐다. 김구·여운형 등 뛰어난 정치가들이 있었지만 이데올로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가 단일민족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증오와 불신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극과 극 사이에 ‘중용’이 설 자리가 없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이 암담하다.”
- 사회 전반에서 적대감이 더 깊어지는 느낌도 든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있겠지만 서로가 모든 것을 부정하고 믿지 않는다. 그 다음 적대감으로 이어지고 그것조차 잊고 산다. 사회 구조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헤어지면 상대에 대한 증오를 자식들이 닮아가지 않나. 그것이 지금 남북의 모습이다. 이 아픔이 어디서 왔는지 진단하고 싶었다. 성공하지 못한 악은 소시민의 광기다. 사이코패스적 사고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아 걱정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느 아버지 오늘 안죽으면 내일 동네 사람 다 죽어” 장씨 아저씨가 준성에게 설명한 아버지의 죽음이다. 세상이 바뀌면 복수도 반복된다. 최용호가 죽은 이유도 그랬다. 북한군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부역자인 마을사람들이 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국군 일병 ‘정대수’의 집을 색출해 포로로 보내려 했지만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나’는 어린 인민군 패잔병을 고변해 죽게 했다. 할머니 이야기 또는 판소리 사설처럼 이어지는 준성의 소리 속에 아버지 모습이 교차되며 인간 본연에 자리한 죄의식을 드러낸다.
-글 쓰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작가들의 좋은 소설을 읽고 나면 주눅 든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남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해왔다고 생각하면 힘이 생긴다. 우리말과 글을 표현하는 자부심도 있다. 결국은 문장이고 재료를 다루는 장인정신이다. 이미지만 다룬다면 문학이 아니다. 소설에 맞는 캐릭터와 미적 가치를 갖는 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 나 자신의 능력 없음을 느끼지만 그것을 감추는 즐거움도 있다.”
-고향도 전상국 작품의 주요 요소다.
“소설 ‘굿’은 대부분 홍천 물걸리가 배경이다. 어렸을 때 겪은 이야기가 내 소설의 구조가 됐다.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은 원천을 찾는 일이다. 강원도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다. 인심은 좋지만 사람들이 표현을 잘 안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에너지를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
-등단 60주년을 맞는 소회는.
“소설 쓰는 일이 참 즐거웠다. 예술은 생명이다. 신명이 없으면 작품을 쓰지 않았다. 그 낯섬의 정체는 창의였다. 남들이 볼 때는 동어 반복으로 보이지만 이전과 다른 형태로 피사체를 바라볼 때 홀로 즐거움을 느낀다. 김유정이라는 한 청년작가에게 빠졌던 일도 창의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 천재성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쓰는 일도 거의 포기했었다. 춘천고 재학시절 교지에 실었던 소설 ‘요지경’의 일부를 삭제당했던 생애 최초의 필화사건도 기억난다. 그 신명의 흔적을 뒤적이는 독자들을 기대한다.”
준성은 동학군의 마지막 혈투로 얼룩진 ‘자작고개’에서 정대수의 유해를 거두고 나도 인민군 유골을 수소문한다. 마을에서는 5명의 유해를 모아 합동 제사를 치른다. 작가의 등단작 ‘동행’과 ‘하늘 아래 그자리’의 연장이자 그가 펼쳐온 ‘분단소설’의 총합이기도 하다. 이제 소설 밖으로 나올 때가 됐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틀 속에 상생은 요원하다. 메나리조의 신명나는 회다지 소리가 들려온다. 죽음을 끝내고, 해원의 굿판을 열 때가 됐다. 그럴 때가 됐다. 김진형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김진형 기자 입력 2023.06.16 지면23면
등단 60년 작가의 마지막 작품… “전쟁이란 악령을 굿하듯 풀어냈다”
열두 번째 소설집 ‘굿’ 펴낸 전상국
소설가 전상국(83)에겐 열 살 때 만난 ‘악령’이 보인다. 6·25다. “우리 사회엔 상대 진영에 적대감을 품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왜 이렇게까지 영혼이 병들었나 생각하다 보면, 가해와 피해가 악순환을 이룬 6·25전쟁에 이르게 된다.” 최근 그가 펴낸 열두 번째 소설집 ‘굿’(문학과지성사)의 주된 문제의식 역시 전쟁과 분단의 상흔. 강원도 춘천에서 지내는 작가는 수화기 너머에서 “전쟁이란 악령을 무당이 굿하듯 작품에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전상국 소설가는 “전쟁과 분단을 겪은 마지막 세대로서 소명이 있다. 그 문제를 소설로 다시 쓴다면,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학과지성사
표제작 ‘굿’은 전쟁 시기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은, 인민위원회 위원장 ‘최용호’가 살아 돌아왔다는 해프닝으로 시작한다. 알고 보니 아버지 행세를 한 아들. 그의 말을 토대로 전쟁 시기 억울하게 죽은 선친들의 묘를 이장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전쟁의 악몽을 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럴 때도 됐잖은가.”
작가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어갈 여지를 남기는 게 내 소설의 미학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소설들과 달리, 내 목소리를 더 집어넣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소리를 집어넣었다고 생각한다. 능청만 떨 게 아니라, 메시지를 던진 거다.”
전상국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행’으로 등단해, 올해 데뷔 60년을 맞았다. 전쟁의 상흔을 다룬 ‘아베의 가족’, 전체주의 질서의 폭력성에 질문을 던진 ‘우상의 눈물’ 등 작품에서 시대와 공명하면서도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작가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항상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전부를 쏟아부었다”고 했다. “나는 청탁받아서 원고를 쓴 적이 거의 없다. 쓰지 않으면 미칠 정도로 기다리고, 글 쓰는 신명이 날 때가 되면 글을 쓴다.” 또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담긴 ‘악의’를 찾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모든 질서화, 의미화된 것을 부정한다. 내 나름대로 악의를 갖고 뒤튼 것을, 독자들이 찾기를 바란다. 독자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특히 ‘신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소설을 즐겁기 때문에 쓴다. 아무리 시대의 문제를 다루더라도, 문장이나 어휘 등 모든 것들이 합쳐져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통합돼 소설의 미학을 지니게 될 때, 신명을 느낀다.”
이번 소설집에는 역사의 상흔을 다룬 작품 외에, 소설가 김유정(1908~1937)과 황순원(1915~2000)의 작품을 오마주한 세 편의 단편을 실었다. 각각 ‘춘천 아리랑’ ‘봄봄하다’와 ‘가을하다’이다. “선배 작가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큰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마지막 소설집이라고 선언을 했는데, 막상 내고 나니 다시 쓰고 싶은 신명이 살아난다”고 했다. “요즘 산속에 묻혀 책 읽는 게 낙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 작품을 읽으면 감동했다가, 절망한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출구를 찾는다. 그 즐거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상국 소설가의 춘천 금병산 문학의 뜰 서재에서 새롭게 출간된 소설집 ‘굿’을 들어보이고 있다.
소설가 전상국이 열두번째 소설집 ‘굿’을 최근 상재했다. 2011년 ‘남이섬’ 이후 소설집으로는 12년 만의 출간이다. 지난 1년 아픈 몸 안에 갇혀 하릴없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작가가 어쩌면 마지막 일 수 있다는 심정으로 엮어 놓은 책이다. 지난 8일 춘천 금병산 문학의 뜰에서 만난 전작가는 “죽기 전에…”라는 말로 입을 뗐다.
“작년 유월부터…, 꼭 1년 됐지. 많이 안좋았어요. 몸이. 여러가지로. 무슨 다른 지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허리 수술을 하고, 근감소증 진단까지 받게 되고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오더라구요. 참 힘들었어요. 그때는 이 소설집을 죽기 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의 표현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것 보다 소설집을 마무리 하는 것이 먼저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말 앞에서는 소설가가 지닌 숙명의 무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특별한 흐름이 느껴졌다.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들에 대한 해설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책의 들머리에 있는 김유정작가의 작품 등에 대한 오마주 작업이 그랬다.
“선배작가로서 또 고향작가로서 (그를 알리는 일을 하면서) 글쓰는 일을 중단할 만큼 흠모했던 김유정작가의 소설을 내 나름대로 해석 해 본 것입니다. 김유정작가가 이런 가치 있는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김유정에 미쳤던 사람으로서 한번 보여주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쓰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흠모한 황순원 선생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소설집 ‘굿’을 펴낸 전상국 소설가가 강원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을 중편소설 ‘굿’으로 정한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단 상황이 야기하는 억압과 부조리 문제를 글감으로 한 작가가 ‘동행’과 ‘우상의 눈물’, ‘아베의 가족’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열린 결말들을 수렴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코 망각이 답이 될 수 없음을 ‘굿’은 말하고 있다.
“등단작부터 아베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분단문제를 다룬 그동안의 작품들이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 속에 비극은 상존하고, 모든 생활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갖고 쓴 것이라면, (굿은) 그것을 마무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동안 모두가 피해자 일 수 밖에 없는 분단문제의 아픔에 대한 진단만 있었지 처방은 하지 못했죠. 이 소설을 통해 작가로서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조형래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해원(解冤·원통한 마음을 풂)의 결말이라고 분석했고, 전작가도 이에 동의했다.
전작가는 이제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을 전제로 속마음을 털어 놨다. 장편소설을 하나 남기고 싶다고 했다. “유년시절의 경험을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 본 것이 그동안의 작업이었다면 DMZ 문제처럼, 이제는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얘기를 쓰고 싶어요. 분단문제, 이산문제가 진부할 수 있지만 10살의 나에게 악령처럼 각인된 그 이야기들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그의 또다른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강원일보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입력 : 2023-06-16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