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고롱고’는 18세기 남태평양 이스터섬에서 사용됐다고 추정되는 문자다. 원주민들의 전멸로 이 문자를 읽는 방법은 소실됐다. 이스터섬의 초대 왕인 호투 마투아가 “우리들의 말은 잊히고 아무도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 예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춘천 출신 최계선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제목 ‘롱고롱고 숲’은 이상하게도 ‘울고울고 숲’으로 읽혀진다. ‘롱’이라는 글자를 180도 뒤집으면 ‘울’이 된다. 인간의 환경 파괴로 숲이 울고 있다는 의미일까. 지구는 거대한 숲의 형상이고, 인간의 삶은 울음으로 태어나 숲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시집은 자연의 순례자로서 더 깊은 숲길을 따라가는 1부 ‘숲에서 숲속으로’, 열매를 통해 우주를 고찰하는 2부 ‘열매행성’, 불교적 세계관을 엮은 3부 ‘달마를 마중하다’로 구성됐다. 시인은 1993년 두 번째 시집 ‘저녁의 첼로’ 이후 20여년간 시를 놓았고, 생태시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한 동물시편 시리즈를 통해 시의 길을 다시 찾았다. ‘동물시편’이 세계를 탐구하는 저변이자 대화였다면, 소재의 자유로움을 덧댄 이번 시집은 우주와 생명의 관계 속 존재론으로 나아간 듯 싶다. 생태시의 계열의 작품부터 선시의 결까지 감출 것 없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쓰여진 시집이다.
서시 격으로 쓰인 ‘숲에서 숲속으로’는 “부득이 집을 나서네”라고 전하는 고백이다. 별다른 짐 없이 먼 길을 떠나는 시인이 무얼 찾고 있는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너무 깊은 숲으로 들어가 곰을 만날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말게나”라고 소식을 나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떠나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의 마음은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랑우탄’이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오랑우탄은 말레이시아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를 꼽자면 ‘나무’다. 숲을 구성하는 각 개체의 모습을 표현하는 동시에 과거부터 이어온 인류의 공통 주제인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시 ‘나무인간의 염불’에서는 얼음낚시터에 나무처럼 앉아 각자의 구멍을 들여다 보며 “나무…… 무엇일까”라고 염불을 읊는 모습이 그려진다. 시 ‘달마를 마중하다’에서 숯가마 찜질방의 달궈진 ‘참나무’는 ‘참나’의 중의적 해석으로도 보여지며 ‘참나’의 ‘무(無)’를 인식하게 만든다. 이 와중에 ‘태양의 숲’에서 “나무에 기생해 사는 사람”들은 제 숲을 갈아치운다.
최계선의 시편 중 드물게도 청년시절 사회적 현상을 암시한 시가 눈에 띈다. ‘호루라기 새’는 “무엇이든 멈추게 걷게 뛰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아무 일 없이 무시하면 구경거리일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기억은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잃어버린 고대 문명, 공백의 역사에 대한 물음도 주요한 맥락을 차지한다. 이스터섬의 롱고롱고 문자와 모아이 석상, 잉카의 돌벽 유적인 삭사이와만, ‘고무인간’이라는 뜻을 지닌 아메리카의 올멕 두상, 튀르키예의 지하도시 데린쿠유 등이 그렇다. 나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은데, 그저 궁금한 것은 늘어만 간다.
시 ‘그게 한 이슬의 밤이고 아침’은 2부 ‘열매 행성’의 심상을 대변한다. “거미의 아침 과일이/거미줄에 열린 이슬이듯/모든 열매 안에는/개울과 텃밭과/구름과 햇살의/만유가 있으니/(중략)/행성 항성 은하 은하군 은하단 모두/포도알이니 우주의 열매들이니”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인연으로 얽힌 생명의 이슬은 우주의 열매와 같다. 무한히 거대하거나 작은 우주의 열매들은 “뱅글뱅글 돌아”가며 다시 싹 틔우고 줄기를 뻗는다. 혼자서 놀 수 없는 ‘시소(seesaw)’의 반복되는 문장 놀이도 압권이다. “올라갔다/내려갔다/눈앞의 당신은 현재의 꿈이거나/과거에 떠났던 그 모습이거나” 등의 형태로 현재와 과거 사이를 오간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금 나’의 모습은 오직 과거만을 비춘다.
시인은 지난 4월 롱고롱고 숲 대신 몽골의 숲을 다녀왔다. 그곳의 초원은 한 때 숲이 울창했던 이스터섬의 전철을 밟듯 인간의 행위로 인해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만명의 승려가 숙청되고 고유 언어조차 잃어버린 현대사도 있었다. 바람이 조각한 ‘모아이’를 닮은 바위들은 아득히 오래전 문명 이전의 시간을 암시할 뿐이었다. 숲이 더는 ‘인간기피증’을 겪지 않도록,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숲 속 스승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숲이 우리를 허락한다면.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입력 2023.06.02 지면 23면
숲에서 숲속으로
최계선
부득이 집을 나서네, 내 생각은
이끼 담요를 걸친 바위들과
길 없는 길을 막는 미끄덩한 통나무 숲을
무작정 헤집고 있다네
가을의 전설처럼 곰을 만나거나
의문의 목덜미가 끄잡혀 나뭇가지에 매달리더라도
칡덩굴 붙잡고 바둥바둥 힘써 볼 요량이니
그리 알고
걱정하지 말게나, 내 담당의인
개구리와 방아깨비 개미 가재 박새에게
원주민들에게, 내 고질병인
인간기피증과 부정적 견해에 대해서도
상담받을 예정이니
나중에 얘기 나눔세, 내가 무얼 찾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뱀 허물에 코를 박고 넘어져
뭔 냄새를 맡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몸 안의 내 껍질 뜯어내며 하염없이 다니고는 있으니
이게 회피나 방편이 아님은 분명한 듯하네
숲에서 숲속으로
나무 뒤에 서 있는 나무로
자연의 순례자로, 나는
여행 다녀도 좋을 사람으로
남고 싶을 뿐이라네
소식 또 전함세
자연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
최계선 시인, 신작 시집 ‘롱고롱고 숲’ 펴내··· ‘아무 때나 쓰고 흘려버리던 자연’에 대한 성찰
[환경일보] “누구나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말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쓴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거나 순리에 어금남 없이 당연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 때나 쓰고 흘려버리던 자연에 대하여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최계선 시인은 시집 ‘롱고롱고 숲’(창이있는작가의집)을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다’는 것,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건 그럼 무얼까. 바로 그 ‘자연’이다. 인간에 의해 무분별히 파헤치고 베어지고 망가진 자연. 결국 우린 자연스럽지 못한 현시대의 중심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자연스러움을 바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 점점 우리 삶과 지구에 닥친 자연스럽지 못한(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를) 이 거대한 위협과 마주하고 있다.
인류가 초래한 이 상징적 사실들을 표현한 단어들이 어느덧 신문 지면이나 뉴스, 인터넷 그리고 우리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시인의 말처럼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위협은 곧 지구상의 모든 자연과 생태이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생존과 우리 삶의 위협이다.
생태환경 시인, 자연의 순례자로 불리는 시인은 삶이 숨쉬는 자연을 추구한다.
시집은 자연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1부 ‘숲의 연대기’와 과거 거석문화의 흔적과 멸종을 향해 치닫는 오늘날의 징후를 보여주는 2부 ‘열매행성’, 나 중심에서 벗어나 숲 속 우주의 감각으로 공존과 공생의 시간을 함께하자는 3부 ‘달마를 마중하다’로 구성됐다.
시는 개구리와 방깨비·개미·가재·박새, 혹등고래, 민들레꽃, 개미집, 도롱뇽, 오랑우탄, 잉카, 올멕 두상, 이스타섬, 안젤리나 졸리, 벌, 들꽃, 나비부터 대자연의 미소까지···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밴 시어와 유머러스하면서도 역설적인 사실들을 전해주는 시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인이 꾸민 시의 숲으로 우릴 초대한다.
<환경일보 이창우 기자> 입력 2023.05.28
숲을 섬기는 어느 시인의 외침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지”
- 춘천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여섯 번째 시집
자연의 순례자가 되는 감각의 실존 제안해
시인의 철학과 탁월한 표현 감각, 유머 눈길
자연사박물관에/자연사한 동물은 없다 (⋯) 목에 가랑가랑 달라붙은 숨/목숨은 방부처리 되었고/느닷없이 죽은 모피를 걸친 인형들은/박물관으로 호송되었다 - 최계선의 시 「돌연사박물관」 중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이 최근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사진)’을 펴냈다. 자연사한 동물은 자연에 있어 사실 자연사박물관은 돌연사박물관이라거나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라는 등 역설적인 유머가 눈길을 끈다. 시인의 시 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이번 시집에서 자연에 대한 그만의 철학과 깊은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롱고롱고’는 18세기 이스터섬에서 사용했다고 추정되는 문자다. 이스터섬의 초대 왕 호투 마투아가 ‘우리들의 말은 잊히고 아무도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연물을 그린듯한 이 문자는 현재까지도 해독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에 ‘롱고롱고 숲’을 구현하고 자신만의 언어가 담긴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는 듯하다. 인간이 위기에 빠진 원인이 야생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긴 시간 스스로 해독해온 자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책은 ‘숲의 연대기’ ‘열매행성’ ‘달마를 마중하다’ 등 3부로 구성됐다. ‘숲의 연대기’는 인간이 숲을 파괴하는 현실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열매행성’에서는 멸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징후들을 보여주는 시 30편이 담겼다. ‘달마를 마중하다’에서는 앞선 파행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공존과 공생의 시간을 함께 영위하자고 제안한다.
모두 77편의 시가 담긴 ‘롱고롱고 숲’은 이처럼 지구의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에 생태학적 상상력을 접목하고 있다. 시집은 야생의 풍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며 풍경이 남긴 기억들을 통해 야생의 감각을 회복하길 기대한다. 창이있는작가의집 刊. 174쪽. 1만2000원.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 출처 : MS투데이 (https://www.mstoday.co.kr)
[책]“숲이 나를 허락한다면, 나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강원일보 김민희기자 minimi@kwnews.co.kr
춘천 출신 최계선 시인,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이 여섯 번째 시집 ‘롱고롱고 숲’을 펴냈다.
그는 지구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심연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변화무쌍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자연 앞에서 큰 위기에 놓인 인간을 위해 태초의 기억으로부터 현 상황을 주목한다. 거대한 문명이 일어나고, 개발에 가속도가 붙으며 인간은 야생을 벗어나 점점 도시에 몸을 담게 됐다. 본래 야생에서 살았던 것이 이유였을까. 자연을 등진 인간의 최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최 시인은 잃어버린 야생에서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야생의 풍경을 다각적으로 바라본 후 ‘롱고롱고 숲’을 화두로 내세워 그곳에서만이라도 자연의 순례자가 되도록 한다.
그가 만든 숲은 방문자의 조건이나 제한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들어가 그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연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에는 최 시인만의 철학이 담겨있고, 유머러스함이 숨겨져 있다. 이미 잃어버린 생명과 사라져버린 숲, 깊은 대지 속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소실되고 남은 자리에 생긴 커다란 상처를 가릴 수 없는 작은 손이지만, 그는 부단히 치유의 손길을 뻗는다. 숲이 숲이었을 때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괜스레 책의 끄트머리가 축축해지는 기분이다. 늦었더라도 너그러운 숲이 우리를 허락한다면, 숲의 소식과 안부 그리고 숲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최계선 시인은 “누구나 자연스럽다는 말은 말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쓴다”며 “우리가 아무 때나 쓰고 흘려버리던 자연에 대해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고 말했다.창작집刊. 174쪽. 1만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