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국 산문집 ‘작가의 뜰’
직접 찍은 사진 함께 수록
춘천 살며 김유정에 심취
최근 문학전시실 준비 매진
“병꽃,원추리,마타리… 그 이름을 아는 순간 비로소 그것이 존재한다.그날 두 사람은 몇 가지 꽃 이름과 서로를 기억하는 일로 눈을 맞췄다.”
분단문학을 통해 뿌리찾기의 글을 써 온 전상국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초는 자연이다.그의 소설 속 자연은 작품의 배경,이야기의 복선,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며 자가 치유의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가 펴낸 산문집 ‘작가의 뜰’은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세심히 담겨있다.꽃과 나무들의 사계를 줄곧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고백하며 문학적 생애를 연관시킨다.옥잠화,해오라비 난초,나무수국,고광나무꽃 등 직접 찍은 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책은 평생동안 작가의 정원을 가꿔온 아내에게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개미취,둥굴레,은방울꽃,금낭화 등을 심고 있는 아내를 ‘움직이는 나무’라고 일컬은 것이다.작가는 그 모습을 보고 꽃 가꾸기를 좋아했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한국전쟁 직후 어린시절 홍천 동창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주말마다 25리를 걸어야 했던 경험은 작가가 자연과 가까워진 결정적 계기다.시골길을 걷는 동안 꽃 하나,풀 하나 허투로 지나치지 않았다.사물 이름을 알아가면서 남들이 못보는 것을 보고 자연과 애니미즘적인 관계를 쌓았다.어린 소녀였던 가수 김추자를 동창마을에서 춘천까지 데려다줬던 기억은 덤이다.전 작가는 “자연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예술이라고 생각할 때 달리 보이고 자연의 이치가 엄청난 것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강원대 교수가 되어 춘천으로 온 1985년부터 그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영원한 청년작가 김유정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고향의 자연 속에서 가난한 만무방들의 생활을 넌지시 바라보는,상처치유의 글쓰기를 했던 김유정의 삶은 전 작가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게 읽힌다.
전 작가는 산국농장의 친구 김희목 시인의 도움으로 금병산터에 자리를 잡고 김유정문학촌을 만드는데 매진했다.자신의 글을 쓰는 것도 놓은 채 신남역을 김유정역으로,신남우체국을 김유정우체국으로 개명했으며 김유정의 소설 제목이 들어간 ‘금병산김유정등산로’와 16마당 실레이야기길을 만들었다.문학촌장을 일찍이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문학촌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전 작가는 “뭔가 씌우지 않고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속수무책 김유정 소설에 빠지면서 그를 기리는 일에 미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요즘 그는 춘천 신동면 자택 앞에 전시실 ‘문학의 뜰’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춘천고 문예반 은사 이희철 시인,넘어야 할 산이었던 친구 이승훈 시인,늦깍이로 경희대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던 서정범 교수,지도교수였던 황순원 소설가 등 세상을 떠났지만 문학적 자산이 되어준 스승과 글벗들을 소개하는 코너도 만들 계획이다.
김유정이 살았던 금병산 자락에 자신의 이름을 살포시 얹은 전상국 작가,올 가을 그가 완성할 문학의 뜰을 동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formation@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