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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선생과 바이러스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06-18 01:49:00

창궐한 전염병으로 나라 안팎이 흉흉하다. 지금껏 이런 역병을 맞아본 적 없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들이 많이 바뀌었고 사회 변화도 크다.

얼마 전 SNS에 올라온 ‘코로나로 배운 것들’이란 글을 보았다. 부자들이 실제론 가난한 사람보다 면역력이 좋은 것은 아니었고, 축구 스타보다 의료종사자들이 훨씬 값어치 있고, 격리되어 있다 보니 동물원 동물들 심정도 알겠고, 인간의 간섭이 없으니 지구는 더 빨리 회복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도 일 잘하고, 정크 푸드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고, 위생적인 삶도 그리 어렵지 않고, 미디어는 헛소리로 가득하고,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공감 가는 글들이었다.

광해군 일기에 “함경감사가 역병 상황을 보고하는데, 역병이 번진 후로 무려 2,9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지금 번지고 있는 이 역병은 숫자 보다는 다른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예방수칙으로 내놓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그것이다. 신체적 감염예방 측면에서는 해법이 되겠지만 코로나19는 그간 우리가 행해온 타인에게로의 닫힌 마음들 때문에 생겨난 세태형벌 바이러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병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고 누적된 것들의 분출 아닌가. 손 씻기도 그렇다. 속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상我相으로 번잡하기만한데 마음은 씻지 않고 겉만 돌보고 있으니 그래서야 되겠는가, 어디 그럼 그렇게 해 보게나, 꾸짖는 듯하다.

올해 김유정선생 추모제는 바이러스로 인해 제단을 차리지 못했다. 다른 문화예술단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춘천시로부터 보조금지급 취소통보를 받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행사를 접었다. 김유정문학상 또한 행사준비가 순탄치 못하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김유정문학상은 김유정기념사업회 고유의 민간사업인데, 딱히 역병 때문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2007년부터 시작한 품격 있는 사업인 만큼 차질 없이 잘 준비해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및 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것이다.

폐병을 앓다 돌아가신 김유정 선생과 지금의 코로나19 증상을 연관시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창궐한 전염병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무분별한 불량 비디오에 그보다 더한 바이러스까지, 무증상의 전파자까지, 옛적에 보던 비디오 경고문이 현실이 되어버린 n번방의 오늘은 착잡하기만 하다.

화상자찬(畵像自贊)이란 말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얼굴을 평가하는 글을 써 넣는 것이라 한다. 옛 선조들은 거기에 자기비하에 가까운 글들을 적어 넣으며 스스로 자만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의, 지금의 우리들은 어떠한가. 부도덕한 일을 일삼는 스스로를 너무도 떳떳해하고 자랑스럽게 치하하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움이란 것이 없지 않은가. 겸허(謙虛)로 알려진 김유정 선생의 글 한 줄이라도 제대로 새겨 읽었더라면 아마 이런 일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병원을 닫고 재난지역으로 달려가 방호복 속 김 서린 안경을 거듭 닦으며, 누가 오라 한 적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으로 몸을 적시는, 적어도 그들만큼은 못하더라도 그들의 공덕을 가로챔 없이 갈채를 보낼 줄 아는, 그런 우리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해 본다.

- 김금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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