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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전' 대학,일반 운문부 대상 작품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11-21 14:33:00

생의 반려

 

춘천시 후석로

김 명 래

 

뜨개질을 하는 거야

코와 코로 연결된 므흣한 구멍

구멍과 구멍 사이 그 뒤로 얼굴이 있어

얼굴이 조각 조각 떠 질 때마다

쓰디쓴 날들에 흐르던 바람의 문장들은

행간의 침묵처럼 숨을 쉬지

우물이 깊어질수록

지문과 지문이 섞인 틈으로 숨은 얼굴을 훔쳐 봐

손톱 끝에 자란 점이 보일 때도 있어

물소리가 심해질수록

구멍의 침묵은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아져

가끔은 코가 빠지거나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하지

침묵은 방울 방울 흩어져 버리는 속성이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아

툭 툭 터지며 햇살에 그을린 엄마의 모습도 보이지

죽음을 그려내듯 허공을 꿰뚫는 오래된 그녀의 빗자루도 보여

아버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둥둥 떠다니는 영혼들이 꽃놀이를 나왔나 봐

하얀 항아리 속 한 줄 가루도 스스로의 형상을 매일 매일 닦아내고 있을까

얼굴은 얼굴을 낳지

얼굴 속에 얼굴이 들어 있지

물 속에 부려진 몇 만 개의 물고기 알처럼 얼굴은 얼굴을 바라봐

기억의 조작이 잘못 되어서일 수도 있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성장통을 멈추고 길을 잃는 경우도 있어

달과 달 사이에서 너를 보면 나는 눈물이 나

별과 별 사이에서 너를 보면 나는 행복해

비록 완주하지 못했을지라도 괜찮아

산다는 건

아직 흘러내릴 얼굴이 남아 있다는 건

끝나지 않은 삶의 끝 어귀에서

먼 수평선의 울음에 대하여

긴 지평선의 침묵에 대하여

꽃잎을 날려 보는 일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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