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하는 거야
코와 코로 연결된 므흣한 구멍
구멍과 구멍 사이 그 뒤로 얼굴이 있어
얼굴이 조각 조각 떠 질 때마다
쓰디쓴 날들에 흐르던 바람의 문장들은
행간의 침묵처럼 숨을 쉬지
우물이 깊어질수록
지문과 지문이 섞인 틈으로 숨은 얼굴을 훔쳐 봐
손톱 끝에 자란 점이 보일 때도 있어
물소리가 심해질수록
구멍의 침묵은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아져
가끔은 코가 빠지거나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하지
침묵은 방울 방울 흩어져 버리는 속성이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아
툭 툭 터지며 햇살에 그을린 엄마의 모습도 보이지
죽음을 그려내듯 허공을 꿰뚫는 오래된 그녀의 빗자루도 보여
아버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둥둥 떠다니는 영혼들이 꽃놀이를 나왔나 봐
하얀 항아리 속 한 줄 가루도 스스로의 형상을 매일 매일 닦아내고 있을까
얼굴은 얼굴을 낳지
얼굴 속에 얼굴이 들어 있지
물 속에 부려진 몇 만 개의 물고기 알처럼 얼굴은 얼굴을 바라봐
기억의 조작이 잘못 되어서일 수도 있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성장통을 멈추고 길을 잃는 경우도 있어
달과 달 사이에서 너를 보면 나는 눈물이 나
별과 별 사이에서 너를 보면 나는 행복해
비록 완주하지 못했을지라도 괜찮아
산다는 건
아직 흘러내릴 얼굴이 남아 있다는 건
끝나지 않은 삶의 끝 어귀에서
먼 수평선의 울음에 대하여
긴 지평선의 침묵에 대하여
꽃잎을 날려 보는 일이 아닐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