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의 아파트에 살고 있던 나와 달리 너는 비교적 낮은 아파트의 2층에 살았다. 학원에서 만난 우리는 둘 다 부모님에게 핸드폰을 뺏겼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졌다. 너의 집이 학원에서 더 가까운 데도 너는 항상 나를 끝까지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그 모습에 나는 너에 대한 모든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열어버렸다.
네가 집안 사정으로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못할 것 같다고 한 날에 우리는 연락을 하지 못해도 만날 방법을 하나 더 만들었다. 너의 방 창문으로 돌을 던지면 네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불쑥불쑥 너를 불러냈다.
딱, 딱, 처음으로 시도해본 날에 돌은 외벽에만 맞았다. 간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대로 맞히는 것이 어려웠다. 창문틀에 돌멩이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면서 튕겨 나갔다. 그래서 네가 창문으로 모습을 보일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안 너는 그 이후 아주 작은 소리에도 창문을 열어주었다.
딱, 딱, 외벽에 돌멩이를 던졌다. 반투명 창문으로 희미하게 너의 실루엣이 보일 때면 반가웠다. 네가 내려다보면서 내게 몇 마디 건넸다.
집에 안 가고 뭐 해?
그냥.
이제 학원 끝났어?
응.
너는 곧 밖으로 나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학원만 안 다닐 뿐이지,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매일같이 돌멩이를 던졌다. 대부분 해가 지기 직전의 시간대였다.
창문이 열리고 네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강에 가면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산 핫초코를 손에 들고 천천히 한강 변을 걸었다. 너는 집 가까이에 한강이 있어 너무 좋다고, 집에 있으면 너무 갑갑한데 강변을 쭉 따라 걸으면 시원하고 좋다고, 특히 이 시간이 제일 멋지다고, 산책하니 좋지 않냐고 쉼 없이 말했다. 한강에 오니 어울리지 않게 말수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보통 때는 말 없이 조용히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나는 너의 이런 변화가 색다르게 느껴졌고 나쁘지 않았다. 네 눈동자 안에 황금빛 물비늘이 너울거리는 물결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저녁놀을 배경 삼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흔들의자에 잠깐 앉아 쉬자고 하니 너는 자연스럽게 겉옷을 벗어 내 자리에 놓아주었다. 나는 거기 앉아 핫초코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툴툴거렸다.
창문에 돌 맞히는 거 생각보다 어려워.
그래? 그럼 다른 방법도 생각해보자.
어떤 거?
한강으로 들어가는 산책로 입구에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있어. 거기서 기다릴게.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대충 7시 안에는 온다고 생각하고 맞춰서 갈게.
이제 겨울에 다다르는 쌀쌀한 날씨였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하자 네가 말했다.
부스에 들어가 있으면 괜찮아.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분홍과 보랏빛으로 어우러진 구름도 모두 물러갔다. 네가 춥지 않냐며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장난치듯이 손뼉을 맞부딪쳤다. 짝, 하는 소리 너머로 머쓱한 얼굴을 짓는 게 재밌어서 크게 웃었다. 세차게 부는 강바람을 피한답시고 너의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마치 너에게 매달리거나 쫓아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우리 집에 다다르고 내가 손을 내미니까 이번엔 네가 내 손을 가볍게 쳤다.
뭐야. 복수하는 거야?
우리는 웃으면서 더 힘차게 하이파이브했다. 한바탕 웃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내일 봐.
네가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돌이켜보면 돌아가는 밤마다 해줬던 말이었다.
내일 봐.
너는 정말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너와 만나면 일단 편의점에 들러 푹 찐 호빵과 유자차 같은 따뜻한 간식을 샀다. 출출해지기 시작하면 잔디밭 아무 데나 가방이나 옷을 깔고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내내 걸었다. 대략 하늘에 더 이상의 오렌지빛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돌아가는 길에 운이 좋으면 달의 위치가 우리가 가는 방향과 동일했다. 그럴 때면 셋이 같이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 날은 너에게 고백하리라 작심하고 전해줄 말도 있다고 너에게 조금 늦게 나오라고 메일을 보내놓은 날이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다. 조악한 가로등에 의지하고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초라해 보였다. 그곳에 들어가 기다리는데 저 멀리 네가 보였다. 너는 나를 보자마자 순간 냅다 뛰었다. 저 멀리 오거리 방향이라 건너야 할 신호등이 세 개나 되는 차도를 그냥 가로질러 뛰어오고 있었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급정거할 때마다 끼익, 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렇게 달려와 숨을 헐떡거리는 너에게 왜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는 거냐며 미친 거냐고 화를 냈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심장이 더 터져버릴 것 같았다. 여전히 숨을 몰아쉬는 네가 할 말이 뭔데, 할 말이 뭔데, 라고 집요하게 물어도 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를 다 펴지도 못한 채 천천히 숨을 고르던 네가 말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미치기도 한 대.
무슨 소리야.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던가.
뭐?
나는 어이없어서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여전히 장난스럽게 웃는 네가 손을 내밀었고 마음이 약간 누그러지는 듯싶기도 했다. 늘 그랬듯이 손뼉을 치려는데 네가 덥석 손을 움켜잡았다.
놀자. 너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
우리는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산책했고 수다를 떨고 간식을 사 먹고 장난을 쳤다. 다만 아까 잡은 손은 놓지 않고 걸었는데 걸을 때마다 한 번씩 크게 뛰는 심장 박동이 얼굴까지 올라와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때마다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너도 나를 따라 했는데 그 모습이 바보 같아서 웃겼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너와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너의 아파트로 가서 창문에 돌멩이를 집어 던지고 숨죽여 지켜보았다. 창문은 묘한 진동 소리만 내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창문을 열어주곤 했었는데. 혹시 창문으로 인기척이 보일까 싶어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네가 살던 아파트에 ‘경, 재건축 정비 예정구역 결정, 축’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달렸다.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심술궂게 돌을 던졌다. 딱, 딱, 돌은 여전히 애꿎은 외벽에만 부딪혔다. 아직도 창문에 제대로 맞히는 거 너무 어려워. 그래도 창문에 맞힐 때까지 던져봤다. 지나가던 경비아저씨가 그러다가 창문 깨진다고 소리를 질러서 냅다 도망을 쳤다.
해가 질 무렵에는 공중전화 부스로 갔다. 한강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이사했냐.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가지.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그냥 그때 얘기할 걸 그랬어.
어째선지 홀로 한강을 걸을 때면 달도 따라오질 않았다. 멀어져 가는 달의 방향이 원망스러웠다.
그 후로 몇 번 더 메일을 보내 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창문 너머에도 공중전화 부스 안에도 한강 변에도 네가 없을 때,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안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