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이리저리 뒤틀리고 꼬이며 하늘을 향해 오른다. 희뿌옇게 질린 물방울들이 공기와 섞여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게 익은 이마엔 이미 땀이 흥건했다.
“야, 그거 아직도 안 끝났어? 빨리 빨리 좀 하란 말야. 팍팍 저으라고. 팍팍.”
어느 새 다가온 관리인이 수진을 다그쳤다. 수진은 고개를 수그린 채 꾸벅 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여간에 요즘 것들은 말이야… 빠져가지고…. 저는 야도 아니고 요즘 것들도 아니고 주수진인데요. 이미 정부에서 정해준 규정 속도를 훨씬 넘겨서 작업하고 있는데요. 수진은 떠오르는 말들을 꿀떡 삼켰다. 거기 아줌마! 일 똑바로 안 해요! 관리인은 어느새 건너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래, 어차피 야 아니면 아줌마니까. 괜히 딴지 걸지 말고 일이나 하자. 주걱을 쥔 손에 배로 힘을 넣었다. 솥을 받쳐든 다리에선 불안하게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이제 대한민국은, 친환경 신기술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솥’을 발표하며 그렇게 말했다. 묵직하고 새카맣고, 어린 애 하나쯤은 들어가고도 남는 커다란 원통. 정식 명칭은 솥이 아니었지만 누구나 그걸 솥이라고 불렀다. 둥글하니 검은 몸뚱이며, 얕은 원뿔모양 뚜껑이며, 펄펄 끓인다는 사용법까지 빼도 박도 못할 만큼 솥과 닮아 있었으니까.
당국이 목을 빳빳하게 세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솥은 ‘획기’ 그 자체였다. 플라스틱이건 가죽이건 비닐이건, 식염수를 넉넉히 붓고 휘휘 저으며 푹푹 삶기만 하면 수 시간 내로 완벽하게 분해된다니. 님비도 다 옛말이다. 태평양 쓰레기섬도, 매립지와 소각장, 그로 인한 분쟁도 전부 안녕. 솥을 데운 자리엔 환경 호르몬도 발암물질도 남지 않았다. 솥을 스쳐간 미세 플라스틱, 나무 젓가락,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전부 증기와 한 줌의 이산화 탄소만을 남긴 채 스려져 버렸다. 위대한 발명, 그야말로 역사의 한 장.
나라에선 소각장과 매립지를 철거했다. 대신 솥들을 줄줄이 걸린 곳이 생겼다. 온 동네의, 아니 전국의 쓰레기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솥단지라 불리는 그곳. 만들어진지 수 년도 되지 않은 솥단지는 늘 일손이 부족했고, 막강한 시급과 하루 여섯 시간 이하 근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 걸었다. 마침 방학을 맞이한 수진은 여기, 도시 끄트머리의 전국 단위 솥단지에 지원했다. 알바를 하던 편의점이 망해 놀고 있던 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진은 시계가 사고 싶었다. 지금 쓰고 있는 시계도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 시계. 금 테두리를 두른 황동색 손목시계를 살 수만 있으면 영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두 달만 견디면 약간 무리해서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솥단지 일은 택배 상하차보다도 일당이 셌다.
오후 내 삼킨 것이 말 뿐인 입은 바싹 마른지 오래였다. 물기 없는 입천장을 혀 끝으로 훑자 오돌도돌한 골이 도드라졌다. 일이 끝나면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을 정도로 사방이 물기인 솥단지 일이었으나 물을 마실 수는 없었다. 대체 웬 쓰레기를 그렇게들 버려 대는지, 잠시 엉덩이 붙일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혓바닥을 대 볼까 싶기도 했지만 구강 내 화상으로 구급차를 부르는 사양이었다. 관리자는 일손이 모자라다며 정해진 쉬는시간에도 일을 시켰다. 그냥 사람 몇 명을 더 뽑으면 될 일 아닌가.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정말 그랬다가는, 수당이 줄어들 게 뻔할 뻔자였다.
오늘도 수진은 솥단지 앞에서 주걱을 힘껏 움직였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번에 작업할 물건은 냉장고였다. 아무리 커다란 솥이라도 냉장고를 한 번에 끓이는 건 무리였으므로 이런 처치 곤란의 물건이 들어오면 부품 단위로 분해해 삶고는 했다. 문짝에 남은 비닐 자국을 봐서는 쓴지 얼마 안 된 냉장고 같은데 왜 벌써 버린 걸까. 문득 수진은 어제 본 광고를 떠올렸다. 늘씬한 연예인이 실내용 드레스를 차려입고선 우아하게 와인을 꺼내는 영상. 신형 냉장고엔 인공지능 도우미며 최첨단 온도 조절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고 했다. 요즈음 냉장고가 자주 들어온다 싶더니만, 그것 때문이었을까. 낭비도 그만한 낭비가 없었다. 쯧쯔, 자연스럽게 혀가 채였다. 누구는 와인은커녕 물 한모금도 아쉬운 팔자인데. 뭘 꾸물거려! 관리인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수진은 문짝을 집어들곤 재빨리 솥 앞으로 돌아갔다.
솥 옆에, 솥 옆에, 솥 옆에… 똑같게 생긴 솥이 놓여진 자리, 똑같은 작업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똑같이 주걱을 저어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흰 것은 연기, 검은 것은 솥, 그 위를 오가는건 사람. 여기에서 다르게 보이는 건 솥에 들어가는 물건들 뿐이었다. 뭘 그렇게 많이들 사고 버리는 건지. 수진은 다른 작업자들과 똑같이 주걱을 들었다. 냉장고 문짝은 불안하게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렸다.
“수진씨, 자리 비어? 그러면 이것도 좀.”
정부에서 내린 안전 지침 상으론 한번에 하나의 물건만을 녹여야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몰려드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다 처리할 길이 없었다. 흘끗 바라본 옆 사람의 솥단지는 이미 자잘한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진은 그가 내민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반지, 목걸이, 팔찌, 아직 쓸 만한 악세사리들. 팔면 제법 돈이 될 만한 것들도 눈에 띄었다. 슬쩍 가져갈까, 망설이던 차에 그것이 수진의 눈에 들어왔다. 어어? 그 시계였다. 수진이 애타게 바라 마지않던, 금색 테두리를 두른 황동색 손목시계. 수진의 눈이 마구 떨렸다. 가슴이 뛰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 솥단지 앞을 떠날 수 있다…….
“너 아까부터 멍하니 서서 뭐 해? 오늘 인천에서 재활용 들어와서 바쁜 날인거 몰라?”
어느 새 다가온 관리인은 수진의 손에서 물건들을 낚아챘다. 반지가, 목걸이가, 무엇보다도 시계가 솥단지의 물 속으로 첨벙첨벙 빠져들었다. 반짝이던 보석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어 달아올랐다. 이렇게 좀 하란 말이야. 이렇게…. 관리인은 수진을 밀치곤 그가 쥐고 있던 주걱을 낚아 채 본인이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격한 움직임에 가뜩이나 위태롭던 솥이 출렁였다. 잠깐만요! 만류의 말을 꺼내려 했지만 바싹 마른 입에선 쉽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수진이 어떤 행동을 취할 새도 없이, 발판을 지지하던 나사가 빠지고야 말았다. 수진이 정신을 차린 건, 관리인도 본인이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솥단지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 뒤였다.
아아악! 어딘가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지금 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솥단지 밖으로 비져나온 관리인의 팔다리가 환상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솥은 공정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수진의 상사였던 관리인은 그저 쓰레기가 되어 녹고 있었다. 더 이상 휘적대지 않고 잠든 문어마냥 늘어진 이의 팔,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솥단지를 마련했어야 하는걸까.
무슨 일 있어? 저기 뭔 일 났대? 사람들의 웅성임이 전해져 왔다. 그들은 시선만 이쪽으로 보낸 채 본인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가리를 쩍 벌린 욕심 많은 솥들을 끊임없이 먹이고만 있었다. 수진은 차마 솥단지를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검은 괴물의 입속에, 쓰레기나 시체가 아니라 욕망의 본모습이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