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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공모전' 중등부 산문 대상 작품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11-21 13:41:00

슬픈 이야기

 

원주여자중학교 2학년

여 수 빈

 

방안에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지금 시각은 오전 10시 42분, 원래라면 온라인 수업을 한창 듣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수업을 멈추고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며 무거운 정적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이 흐르자 숨이 턱 막혀왔다. 뭐라 말하고 싶지만 내뱉을 수가 없었고 그저 고여 가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삼켜낼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생각했다. 아직 돌아가셨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괜찮아지실 수도 있지. 작년에 그 날처럼 이 고비를 이겨내실 거야.’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반복해서 외치며 손을 움직여 마우스를 클릭하자 수학 수업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그렇게 국어 수업까지 다 듣고서 다시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던 그때, 핸드폰이 몸을 마구 비틀며 움직였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 것 이다. 나는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목소리를 여러 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어떻게 됐냐고 물으려는 그때. 엄마께서 먼저 내 이름을 부르셨다. 엄마께서 울고 계셨다. 내 이름을 부르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내 심장이 급격히 빠른 속도로 뛰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 이제 우린 어떡하면 좋니......”

빠르게 뛰던 심장이 멎는 뜻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께서는 그 한마디와 함께 더 오열하시며 흐느끼셨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이 모든 일이 꿈이기를 그렇게 된다면 꼭 당신의 존재를 믿을게요. 교회도 일요일 마다 꼭 나갈게요.’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안이 분주해졌다. 엄마는 영정 사진과 할머니께서 즐겨 입으셨던 옷들을 찾느라 바쁘셨고 이모는 할아버지를 챙기시느라 바쁘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돕고는 있었지만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동생하고 엄마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오빠는 마당으로 나갔다. 나중에 들어왔을 때 눈가가 벌겋게 충혈된 것을 보니 울고 들어 온 것 같았다. 이모는 짐을 전부 실고 가기 위해 집에 잠깐 들렸다. 엄마는 이모가 오니 더 바쁘게 움직였다.

수건, 비누, 옷, 로션 등 많은 것을 챙겨 가방에 넣고 이모를 따라 차에 탔다. 이모가 마지막 짐을 나를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모에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충혈 되어 있었고, 눈가도 촉촉해 보였다. 결국 나만 울지 않은 것이다. 이모는 아무 말 없이 날 꼭 껴안아 주셨다. 처음에는 날 왜 안아주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모와 엄마가 나가자 집 안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그날 하루는 나 빼고 모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이 한번 번쩍였다.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말을 못해줬다는 엄마의 문자였다. 엄마는 이틀이나 삼일 뒤에 집으로 돌이올 것 같고 그때동안 오빠 말 잘 듣고, 동생 잘보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긴 문자. 나는 엄마도 몸조심 하고 밥 잘 챙겨 드시라는 답장을 보낸 뒤 또 다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12시가 넘어가 있었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이러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벌떡 일어나 동생을 재우고 화장실로 향했다. 밖은 벌써 깜깜해져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 화장실로 향하는 길. 귀뚜라미가 울었다. 어느 때보다 더 구슬프게 울었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난 그곳에서 허공을 바라보다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리움이 되어 바닥에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흐르지 않았던 그 눈물들이 드디어 흘러내렸다. 마치 여태까지 참아왔다는 듯이 한참을 쏟아내고 쏟아냈다. 신도 참 무심하시지 왜 하필 이 상황에 코로나가 퍼져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면회라고 해 봤자 한번 밖에 못 갔고, 그 한번 간 면회라는 것이 유리 벽 너머에 있는 할머니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그게 무슨 면회란 말인가, 거기다가 할머니께서 이불을 아무리 여러 겹을 덮어도 옷을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너무나도 춥다고 하셨을 때,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집에 가고 싶다 하셨을 때, 그때도 난 할머니의 손 한번 얼굴 한번 어루만져 드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하셨을 때도 우리는 그저 다음에 꼭 갈게라는 거짓말만 반복 했어야 했다. 이 모든 게 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임종 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볼 수 있는 가족 수가 세 명으로 제한되어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덕분에 난 할머니의 마지막도 함께하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일어났을 때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어떻게 내 방까지 와서 잠이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건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다는 것이다. 그때에 할머니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날 불쌍히 바라보시던 그 표정, 난 목 놓아 울며 할머니에게 안겼다. 꿈이었지만 촉감이 너무나도 진짜 같아서 할머니의 향취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나머지 꿈에서도 한참을 울었고 할머니께서는 우는 날 바라보시며 할머니의 허무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들어도 할머니의 인생이야기는 허무했다. 그래서 더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눈동자에 는 눈물이 고여 있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때 이 할미가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옆에 있었는지 아니? 집에 내 아들과 딸들이 있잖아. 그래서 평생 집안일만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하나도 못하면서 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죽으니까, 너무 후회되더라. 우리 아가는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하고 엄마 말 잘 듣고 그렇게 살아 알겠지? 아이고, 우리 아가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죽으려나 했더니 그게 안 되네. 잘 지내고 아프지 말고 알겠지?”

이 말이 할머니께서 내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를 만났고 또한 우린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의 얼굴을 꿈에서라도 봐서 좋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나도 막대한 후회감이 밀려온다.

‘사랑해요’

나는 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던 걸까. 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아갔으면서 난 뭘 했던 걸까.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못했던 걸까. 오글거리는 게 뭐 어때서. 지금 이렇게 후회하며 눈물 흘린다고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데.

“전하지 못한 이 말과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 평생 가슴에 새겨 두고 살아갈게요. 매일같이 아침 차려 주시고 투정 부려도 다 받아주셨는데 정작 저는 아무것도 못해 드려서 죄송하고 또 고마워요. 할머니 너무나도 사랑해요. 그리고 제 할머니여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이 상황이 너무 믿기 힘들고 또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할머니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그 말들을 혼자 내뱉고 나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던 마음이 진정되는 듯싶었다. 눈물을 닦으며 방안에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밝게 웃으며 한마디를 꺼냈다.

“할머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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