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행사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행사를 통해
김유정 선생을 추모하고 마음에 담습니다.

김유정문학상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한강수력본부와 김유정문학상운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2007년부터 시작된, 한국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문예지 및 단행본을 통해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여 매년 1회 시상하고 있으며,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전승과 한국소설문학의 새 지평 열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7회 이인성 (2013년 수상자)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06-18 08:15:00

  중편소설 「한낮의 유령」

 

2013(제7회) 김유정문학상 심사평

문학현장에서 저마다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읽는 일은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지형도를 보는 것과 같았다. 각 작품들마다 ‘재난’으로 표상되는 사회적 실존적 불안과 음험함, 급속한 변화의 이면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입 벌리고 있는 현대사의 상처, 급속도로 비인간화되어가는 세태에의 공포 등등 지금 이곳에서의 삶과 사회를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충실히 성찰하고 관찰하면서 문학의 권역 안으로 끌어들여 다채롭게 펼치고 있었다.

이인성의 소설 ‘한낮의 유령’은 사로잡힌 영혼의 초상 혹은 비망록이라 할 수 있겠다. 창작이 이루어지는 풍경의 내부이며 소설가가 소설에 대해 갖는 욕망의 속살이자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있는 내부의 풍경이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내밀한 짝짓기’일 한편의 소설이 발아하기까지, 혹은 씌어지기까지의 그 무정형의 욕망, 모색과 방황, 비루함과 절망이 창작과정의 은유로 작용하면서 죽음의 극복 혹은 유예라는 문학의 오래된 명제, 근원성을 건드린다. 소설이란 헛것, 의인화된 욕망이 유령인가, 소설에의 욕망에 휘둘리고 조롱당하며 블랙홀로 빠져드는 작가가 유령인가 하는 물음이 왜곡되고 굴절된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종내 작가란 거울 안에서 ‘내’가 없는 거울 밖을 내다보는 존재일 거라는, 그가 도달한 인식에 다시 한 번 삭제줄을 그음으로써 글쓰기 주체와 대상에 대해 연민도 냉소도 아닌 제 3의 시선을 획득하고 있다.

이제껏의 이 작가의 작업과 성취가 그러했듯 이 소설은 우리에게 친숙하거나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질료로 하여 자신을 먹이 삼으며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려 하는 이 작가의 오롯한 노력은 지난하지만 또 그만큼 값진 것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글에 대한 자유의지는 독자에게 독법의 자유를 유쾌히 허용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것 또한 이 소설이 갖는 다양한 코드와 열림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정희: 소설가)

 

제7회 김유정 문학상 본심에서는 예심을 거친 20편의 중단편 중에서 다시 8편의 작품을 선별하였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본심 논의된 작품은 김숨의 「법 앞에서」, 김연수의 「동욱」, 박민규의 「군함도의 별」, 윤이형의 「굿바이」, 이기호의 「이정(而丁)」, 이인성의 「한낮의 유령」, 이장욱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정한아의 「예언의 땅」(저자 이름의 가나다 순) 등이었다. 사회적 폭력, 자본주의 비판, 과학소설적 상상력, 세속성에 대한 성찰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읽고 이야기하는 과정은, 한국문학의 넓이와 깊이를 경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이들 작품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의 시간을 거친 후에 제7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으로 이인성의 소설 「한낮의 유령」을 선정했다. 「한낮의 유령」이 보여주는 치열한 문학적 열정과 독자적인 문학 세계는, 오늘날 한국문학이 다시 한 번 음미하고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문학적 장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인성의 소설은 소설 이전의 지점에서 시작해서 소설인 것과 소설이 아닌 것 또는 소설이 못 되는 것들을 거쳐서 소설인 듯 소설을 넘어서 있는 그 어떤 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는 소설이 씌어지기 이전에, 또는 소설의 바깥에, 그리고 소설이 씌어지는 과정에, 마치 유령처럼 출몰하는 모든 가능성들을 자신의 소설에서 승인하고자 한다. 이인성의 소설이 낯설고 난해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인성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소설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낮의 유령」은 스스로 소설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스스로 소설이 되어버린 어느 작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령의 근거는 어두운 밤이지 한낮일 수는 없는 법이다. 한낮의 유령은 자신의 존재론적 경계를 넘어서 있는 유령이고, 어쩌면 한 번도 존재해 본 적이 없는 유령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한낮의 유령이란 아직까지 씌어져 본 적이 없는 소설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인 것이다. 따라서 씌어져 본 적이 없는 소설(한낮의 유령)을 불러들여 한 몸이 되고자 했던 작가가, 스스로 한낮의 유령(소설)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인성의 소설은 삶과 죽음의 경계,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 현실과 비현실과 반현실의 경계, 언어와 욕망의 경계 위를 자신의 몸으로 움직여 간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그 경계들을 흐릿하게 만든다. 그 지독한 과정을 작가는 예전에는 순교라고 불렀고 이제는 한낮의 유령 되기라고 부른다. 여러 문학적 논의들을 통해 한국문학이 애도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지만, 회갑을 맞은 저자는 여전히 소설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모두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자 한다. 이 도저한 욕망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 또한 한낮의 유령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인성이야말로 마치 유령처럼 한국문학의 안과 밖을 넘나들었던 작가가 아닐까. 김유정 문학상은 작가에게 한낮의 유령을 되돌려 주고자 한다. 그의 소설을 한낮에 불러낸 김유정 문학상에게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김동식:문학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수상소감

웃음의 그늘 속에서 / 이인성

김유정문학상의 수상자로 저를 지명해주신 데 대해 우선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솔직히, 어느날 문득 전상국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을 때, 저는 너무 뜻밖이라 몹시 놀랐고 무슨 이유인지 의아해했으면서도 그것이 이 상의 수상 통고를 위한 것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아마도 제 속엔, 제가 ‘상’이란 것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작가라는 자의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정희 선생님까지 거드셔서 제 수상이 기정사실화된 뒤에도 여전히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과연 제 문학이 김유정이라는 이름에 값할만한 것인가라는 자문이 곧바로 뒤따랐던 것입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저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가 이해하는 김유정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잠깐 동안, 이에 대한 이야기로 제 수상 소감을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유정이 한국 근대문학에 희극적 미학의 초석을 놓은 작가라는 평가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김유정의 문학을 가장 넓고 깊게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웃음입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을 단순히 토속성에 기초한 해학 정도로 해석하는 데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교과서에 자주 실리는「봄 ․ 봄」은 전형적인 소극(笑劇, farce)의 폭발하는 웃음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산골」이나「동백꽃」이 자아내는 웃음도 비교적 그에 가까운, 풋풋하고 순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유정의 더 많은 다른 작품들에서 전혀 색다른 질감의 웃음들이 제공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들이 김유정의 문학적 의미를 확립하는 데 더욱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웃음은 매우 복잡한 인간적 현상입니다. 폭소가 있자니 미소도 있고, 아이 같이 순수한 웃음 반대편에 야비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자조적인 웃음도 있으며, 비웃음 ․ 헛웃음 ․ 선웃음 등등, 웃음의 편차를 나누자면 한도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김유정의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들이 유발하는 웃음의 다양한 양상에 놀라게 되고 점차 그런 웃음의 심연에 빠져들게 됩니다. 한 프랑스 이론가의 설명에 의하면 그러한 양상은 원초적인 단순한 웃음 뒤에 개입되는 어떤 사유나 감정의 농도에 의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희극적 작품을 읽으며 그 웃음의 편차를 가리고 가늠해 나가는 작업은 곧 작가가 어떤 웃음의 효과를 노렸는가 혹은 유발시켰는가를 밝히고 그 진정한 의미를 캐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저는 김유정 문학에 대해서도 그러한 접근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김유정 문학의 감춰져 있던 가치들이 한층 풍요롭게 드러날 테니까요.

길게 이야기할 자리가 아니므로, 저는 두 개의 작품만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 하나는「솥」이란 작품으로, 들병이에 빠져 아내를 버리고 도망치려는 어수룩한 남자를 희화화하며 진행되던 이 이야기 속에서, 그 들병이의 본 남편이 갑자기 등장하여 “꿈이어야 할 텐데 꿈은 아니니” 현실은 현실이지만 악몽이나 다름없는 사태가 펼쳐지리라 예감되는 그 순간, 그러나 전혀 뜻밖의 상황이 연출됩니다. 들병이와 그 남편이 보여주는, 어떤 현실적 개연성도 부여받지 못할 행동들은 무슨 ‘블랙 코미디’처럼 우리를 단숨에 너무도 부조리한 상황으로 몰고 가며 그 부조리가 빚어내는 웃음, 이를테면 어이없는 웃음, 기막힌 웃음, 쓰디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듭니다. 그 연장선에서, 서울 산기슭의 셋방 집에 모여 있는 ‘따라지’들이 얽히고설키는「따라지」는 좀 더 조직화된, 거의 이오네스코를 연상시키는 부조리극 그 자체라 할 만합니다(작품 속에도 “재미스런 연극”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마구잡이 싸움이 벌어지다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막에 빠져드는 장면 속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웃음은 너무도 괴상한, 그로테스크한 웃음이기까지 합니다.

김유정 소설의 인물들은 대개의 희극적 인물들이 그렇듯 “걸쌈스러운 탐욕”(「떡」) 즉 편집증적인 욕망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들은 자주 격렬히 싸우는데, 김유정 문학의 독특한 면모 중의 하나는 그 싸움이 언제나 원점으로, 무(無)로 환원된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어떤 새로운 결과도 낳지 못합니다. 변화시키고 싶어도 끝내 변화하지 않는 삶의 저 지독한 부조리성! 그의 인물들 상당수는 현실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이미 분해된 관계 속에 들떠 있는 떠돌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떠돌이들은 서서히 근대화의 상징인 도시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에서도 ‘따라지’일 뿐이며 그들이 살아내는 현실도 근대적 합리성의 이상과는 너무 먼 혼돈의 상황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식민지 통치로 인한 유사 근대화를 겪으며 그 사회를 관찰했을 따름인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양태마저 이미 예언하고 있는 듯이 우리의 의식의 깊은 곳을 찌르고 드니까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동시대의 또 하나의 불행한 천재였던 이상과 동전의 앞뒤와 같은 ‘짝패’를 이룹니다. 김유정이 그리는 그 웃음들의 뒷면에 침잠해, 이상은 희극적 인물들의 비극성을 파고들어 갔습니다.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은 원래 원천적으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의 차이는 단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시선의 차이일 뿐입니다. 요컨대, 그렇듯 둘이면서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둘인 관계 속에 놓인 이 두 작가는, 그들의 다르면서도 흡사한 삶의 운명에 상응하는(‘구인회’를 통해 접속된 그들은 서른도 안 되는 나이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만의 흡사하면서도 다른 문학적 추구를 통해, 계몽주의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우리 시대의 ‘현대적’ 삶까지도 통찰케 하는 새로운 미학의 선구자들로 우뚝 섰던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고백하는바, 저는 대학에서 프랑스 희극을 전공하고 웃음에 대해 강의를 해왔던 사람입니다. 제 소설만 읽은 어떤 이들은 간혹 이상하다는 듯이 제게 묻곤 했습니다. 그렇게 암담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웃음을 전공했냐고요. 조금 더 저를 아는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런 암담한 속에도 웃음을 틈틈이 끼워 넣는 게 너다운 모습 같다고요. 글쎄요, 실은 끼워 넣는 게 아닙니다. 견디고 견딘다는 의식에 시달리다 보면, 웃음은 저 스스로 단말마적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나마 그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암울한 웃음이더라도, 웃음이란 것은 어쨌든 절망의 벽에 숨구멍을 내는 마지막 힘인 까닭입니다. 그 안간 힘이 이 삶을 끝끝내 응시하게 하며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게 하고 한 줄의 글이라도 더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소설들은 어쩌면 오래 전에 김유정이 웃음 뒷면에 드리워 놓은 깊은 그늘 속에서 은밀히 서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김유정 문학을 재음미하며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도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애초에 이 상을 제정한 김유정기념사업회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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