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행사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행사를 통해
김유정 선생을 추모하고 마음에 담습니다.

김유정문학상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한강수력본부와 김유정문학상운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2007년부터 시작된, 한국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문예지 및 단행본을 통해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여 매년 1회 시상하고 있으며,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전승과 한국소설문학의 새 지평 열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5회 강영숙 (2011년 수상자)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06-18 08:05:00

  단편소설 「문래에서」

 

2011(제5회) 김유정문학상 심사평

 

김치수

금년도 김유정문학상 수상 후보자를 뽑기 위하여 우리 세 사람은 지난 일 년 동안 발간된 계간지와 문예지들을 분담해서 읽고 후보가 될 만한 작품들을 각자 5편 내외를 뽑아서 함께 읽기로 했다. 그렇게 모아진 모두 열여섯 편의 작품을 읽는 가운데 한국소설의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적인 서사 중심의 소설로부터 실험적인 소설에 이르기까지 150여 편의 다양한 작품들이 많은 발표기관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잡지가 많고 발표 작품이 많다고 해서 한국소설의 풍년을 구가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김숨의「막차」, 구효서의「바소 콘티누오」, 이장욱의「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강영숙의「문래에서」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숨의 작품은 시골에 사는 부모와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한 작품이고, 구효서의 작품은 90대의 홀로된 아버지와 50대의 미혼의 아들이 함께 사는 일상생활을 연주회라는 매개를 통해서 하나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고, 이장욱의 작품은 반체제 작가인 메슈코프가 소련의 붕괴 이후 떠나버린 아파트에 묵게 된 주인공인 작가의 경험을 서양식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기술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이 주는 편안함보다는 강영숙의 작품이 주는 고통스러움은 읽는 사람을 괴롭혔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는 삶의 한 단면을 너무나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방적공장과 철공소라는 영세 중소기업의 노동자들과 아직 각광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 ‘문래동’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인공은 여기에서 느꼈던 가난하지만 살아있는 생존의 열정을 뒤로하고 새로 개발되는 농장지역인 Y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이사 가서 겪는 주인공의 삶은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다는 광고와는 정 반대의 것이다. 화자는 구제역으로 동물들을 끊임없이 살 처분시키는 직업을 가진 남편에게서 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냄새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소주 없이는 잠도 못 이루는 남편과 사랑도 할 수 없는 화자는 죽어가는 새 떼들의 주검, 피로 물든 냄새나는 침출수, 동물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는 여자의 공허한 외침, 수천마리의 돼지가 구덩이에 묻히는 가운데 펼쳐지는 방역 소독의 무력함을 겪으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끔직한 현실을 재현하는 표현력과 구성력은 첨단 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는 우리가 얼마나 황당하고 원시적인 아픔으로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는지 공감하게 한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이 작품이 도달한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이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수상을 축하한다. - 2011년 4월 6일

 

오정희

김유정 문학상 본심에서 관심깊게 읽은 작품은 강영숙의 ‘문래에서’와 김숨의 ‘막차’ 구효서의 ‘바소 콘티누오’ 이승우의 ‘칼’ 등 4편이었다. ‘막차’는 시종 고요하고 적막한 문장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면서 소설속 인물의 내면적 공황상태를 섬세히 그러나 섬뜩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바소 콘티누오’는 우선 읽는 이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뛰어나고 기법상으로도 공교하여 나무랄 데 없이 매끈하게 뽑아낸 장인의 솜씨가 통쾌하다. ‘칼’은 가벼운 일상성과 개연성 없는 환상으로 무책임하게 도피해버리는 경향이 심해지는 요즈음 문학 풍토에서 인간 안에 내재한 사랑과 증오, 죄와 윤리의 문제 등 무거운 주제를 붙안고 독자에게 성찰과 질문을 요구하는 진지한 문학적 노력을 하고 있는 작가의 자세에 호감이 갔다.

‘문래에서’는 견고한 사회구조로부터 점차 밀려나고 있는 가난한 젊은 부부의 절망과 불안을 구제역으로 인한 살 처분이라는 실제상황에 대입하여 그리고 있다. 차분한 서술로 보여주는 현실의 정경과 상황이 그 어떤 기괴한 환각과 환상보다 더 음험한 공포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잔혹한 살육의 시대, 비명을 지르며 생매장되는 동물들과 함께 매몰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우리들이 도살자이자 곧 도살물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고통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 괴로워하는 정신이며 사랑이라는 것, 그것만이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이 작가는 그야말로 온힘을 다해 간신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 작품 모두 작가 특유의 개성과 좋은 작품으로서의 힘을 갖추고 있으나 이 시대, 우리들의 집단적 악몽의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통에 맞선 진지한 작가적 고민이 도식과 상투성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영숙의 ‘문래에서’를 수상작으로 밀게 되었다. - 2011년 4월 6일

 

전상국

본심에 오른 16편의 작품 중 최종 논의 단계까지 남은「문래에서」(강영숙),「막차」(김숨),「바소 콘티누오」(구효서),「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이장욱),「칼」(이승우) 등 다섯 편은 모두 나름의 독특한 소설 미학으로 오늘의 한국소설 현주소 확인에 부족함이 없는 역작들이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이 이룩한 이제까지의 높은 문학적 성취와 견주어 볼 때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작품이란 확신이 서지 않음으로 해서 수상작 결정이 쉽지 않았다.

오랜 숙의 끝에 강영숙의「문래에서」를 수상작으로 하자는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문래에서」는 한 작가로서의 새로운 지평 열기와 다르지 않은 독특한 톤으로 아직 진행 중인 구제역 가축 살 처분 상황을 발 빠르게 작품 소재로 선점한 수작이다. 특히 아침의 <신선한 우유> 한 잔을 꿈꾸며 찾아간 농촌 마을 새 거주지에서의 섬뜩한 죽음의 냄새를 배경으로 황막하지만 아직 삶의 활기가 남아 있는 먼저 살던 후진 도시 변두리 문래마을의 어린 예술가의 모습을 오버랩한 작가 특유의 사람 사랑 화법이 인상적이다.

수상자가 김유정과 동향이라는 이 심상찮은 인연이 수상의 또 다른 의미로 새겨질 수도 있을 터. - 2011년 4월 6일

 

  

수상소감

3월 중순에 저는 중국 연변에 있었습니다. 일본이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직후여서 연변도 어수선했습니다. 낮에는 국경 지역의 스릴을 즐기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숙소로 돌아가 일본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무섭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 친구의 이메일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자연재해는 일본에서 일어났지만 인간문명 전체에 대한 한계와 임계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문명의 시스템도 전 세계가 재검토하고 바꾸어 나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써 이번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고 연구해야겠습니다. 제가 지금 살아 있는 것도 기적 같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 전처럼 우에노 공원을 산책하고 술 한 잔 할 날이 올까요. 그런 날이 언제 올까 기다립니다.

고도문명 사회의 가장 안정된 상태라는 일본의 이미지와 우리의 6,70년대 풍경과 비슷한 연변풍경이 교차되면서 기우뚱한 감각으로 두 주를 보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두 번째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쓸 무렵부터 봄이면 짙어지는 황사를 보면서 일상적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자연환경의 변화와 자연재해에 대해 조심스럽게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2004년 동남아 지진해일 피해로 전 남편을 잃은 여자의 동남아 여행기도 썼습니다. 또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어 도시의 일부가 텅 비어버린 도시 뉴 올리온즈에 대해 쓰기도 했습니다. 또 대홍수를 겪고 몇 년째 홍수 피해 복구 작업중인 아이오와에 대해서도 썼습니다.

14세 때 서울로 이주해간 저에게 도시란 언제나 거대한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도무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부두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배, 커다란 덩어리가 바로 도시였습니다. <문래에서>는 끝없이 저를 자극하는 도시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의 후유증을 내면화하고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의 얘기도 동시에 썼습니다. 또 실종된 아내를 찾아 도시를 떠돌지만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옛 장소를 하나도 찾지 못하고 개발에 떠밀려 늘 공사중인 도시를 방황하는 남자의 얘기도 동시에 썼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른 봄에 도시에 관한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연달아 쓰게 되었고 중국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우연히도 구제역이 떠도는 와중에 충남 홍성에 잠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소설에서 썼던 것처럼 매몰지 같은 구체적인 장면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래에서>를 쓸 때는 그나마 희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가축들이 쓰레기 더미가 되고, 지진의 잔해와 함께 사람이 쓰레기가 되는 현실 속에서 예술이, 혹은 예술적인 것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그러나 쓰다 보니 그렇게 쓸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에 사는 친구가 이메일에 썼던 것처럼 도시의 운명이, 문명사회의 운명이 임계점에 도달해 있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문래에서>를 쓴 이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춘천은 굉장히 모던한 곳입니다. 풍경도 사람들도 심지어 강마저도 사람을 압박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나는 여기, 너는 거기에 서 있습니다. 가끔씩, 강이 저기에 있네, 하고 응시할 정도로 춘천의 이미지는 리얼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리얼하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그 경계를 흐리는 듯한 춘천의 이미지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김유정의 소설 텍스트도 저에게는 한없이 모던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김유정의 끈기와 폭넓은 해학, 그리고 인간애에 비하면 저의 작품은 너무 작고 어두운 세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신인이고 지금까지 쓴 것보다 앞으로 쓸 것이 더 많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유정문학상은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런 상을 받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뒤에서 준비하시는 김유정문학촌의 여러 선생님들의 손길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또 부족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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