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행사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행사를 통해
김유정 선생을 추모하고 마음에 담습니다.

김유정문학상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한강수력본부와 김유정문학상운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2007년부터 시작된, 한국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문예지 및 단행본을 통해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여 매년 1회 시상하고 있으며,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전승과 한국소설문학의 새 지평 열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13회 편혜영 (2019년 수상자)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06-18 09:01:00

     단편소설 「호텔 창문」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심사평

2019년 김유정 문학상 본심은 총 20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읽어가는 과정은 심사의 의무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 정도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품들에 대한 개별적인 검토를 거쳐 다시 4편의 작품을 선별하였다. 해당 작품은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최은미의 「보내는 이」, 편혜영의 「호텔 창문」(저자 이름의 가나다 순)이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세밀한 토론을 거쳐 편혜영의 「호텔 창문」을 제 13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작 「호텔 창문」은 죄의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작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운오는 사촌형 운규의 기일을 맞아 고향에 간다. 그는 왜 사촌형의 제사에 가는가. 19년 전에 운오는 형의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갔는데,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발밑의 바위를 딛고 살아난 적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운오가 딛고 올라 선 것은 바위가 아니라 형이었다. 동네 사람들을 협박하고 폭력을 써서 돈을 갈취했던 형, 가정 사정 때문에 큰집에 와 있던 운오를 두고 “죽을래?”라며 위협을 하고 주먹질을 일삼았던 형. “처음에 운오는 자신이 딛고 올라선 바위와 형을 연결 짓지 못했다. 자신의 생존과 형의 죽음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죽은 형은 의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고, 운오는 죄를 지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큰어머니는 운오에게 형의 제사에 참여할 것을 강요했고, 그가 오지 않으면 제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제사는 운오의 죄를 주기적으로 가시화하는 의례였고, 운오는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제물(祭物)이었던 셈이다. 죄의식에 압도당한 운오의 삶이 온전했을 리가 없다. 삶의 의미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다시 제사에 참여하러 고향에 왔다. 고향에 와서 운오가 보고 들은 것은 화재였다. 시장에 있던 한 호텔에서 불이 났고, 화재와 관련이 없던 이웃 호텔에 불이 옮겨 붙었다. 이웃해 있었을 뿐이지 별도로 운영되던 두 호텔이 화재에 휩싸이는 모습은,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라 여겼던 형의 죽음이 운오의 삶을 죄의식으로 뒤덮어간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운오는 우연히 형의 친구를 만나서 그가 근무했던 수도관 보온재 공장의 화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식적인 화재 원인은 자연발화로 판명이 됐지만, 형의 친구는 공장에서 해고되었다는 것. 하지만 형의 친구는 화재 원인이 자연발화였는지, 자신의 실수로 인한 실화였는지, 사장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방화였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죄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화재의 원인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지만, 공장의 화재는 형의 친구가 저지른 죄가 되었고 해고라는 벌을 받은 셈이다. 그 사이에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는 문자가 여러 통 와 있다. 하지만 운오는 제사에 가지 않는다.

죄의식은 말 그대로 죄에 대한 의식이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잊지 않고 늘 의식하는 것이 죄의식이다. 따라서 죄의식은 죄를 범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기처벌이기도 하며, 똑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윤리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소설 ?호텔 창문?은 죄의식에 관련해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는 죄의식의 전제가 되는 죄와 관련된 것이다. 죄의식이 있으려면 그 이전에 죄가 먼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형의 죽음은 누가 보더라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의 죽음이 운오의 죄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운오의 생존에 대해 죄라고 확정짓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살인과 같은 명백한 죄가 존재하며 거기에 대해서는 처벌과 죄의식이 요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죄의식이 죄보다 먼저 확정되어 강요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돈을 못 벌거나 공부를 못 하는 것은 죄인가. 경제적인 문제 또는 부모의 사정으로 친척집에 얹혀살아야 되는 상황은 죄에 해당할까. 부끄러운 일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죄라고 확정짓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상황 자체가 죄라기보다는 그것을 죄라고 보는 사고의 틀이 죄로 확정짓기 어려운 것들을 죄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호텔 창문?이 죄의식에 관해 또 다른 물음을 던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우리는 죄의식의 문법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죄의식에 근거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이 그것. 소설에 등장하는 형과 운오의 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축도(縮圖)에 해당한다. 형은 죄를 많이 지었지만 죄의식 없이 살았고 죄 없이 죽었다. 반면에 운오의 경우 죄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죄의식이 먼저 주어졌다. 큰집에 얹혀산다는 상황이 죄가 되건 아니건 상관없이 운오는 죄의식부터 강요받았다. 죄가 있다면 찾아야 하고 죄가 없다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운오의 삶이었다. 죄의식의 위계적인 강요와 수용을 통해서 형과 운오는 친족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죄로 확정지을 수 없는 것들을 죄로 규정하고, 그러기 위해서 과도한 죄의식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그리고 죄 없는 죄의식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원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호텔 창문?이 보여주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른다면, 소설 ?호텔 창문?에 눈길이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해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해 섬세한 성찰을 보여준 작가에게, 고마움과 함께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 본심 심사위원 : 전상국, 오정희, 김동식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온 밤, 약 백 년 전에 태어난 작가의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습니다. 야물고 단정하게 생긴 흐릿한 사진 속의 작가는 제가 막 소설가가 된 나이에, 스물 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보에는 약 4년 간 30편의 소설을 남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작품 일람을 보니 1935년에 10편, 1936년에 12편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작가의 나이 고작 스물일곱, 스물여덟 때의 일입니다. 지금의 연령과 견주기에는 아무래도 시차가 있지만, 그럼에도 여물지 않은 청년이 어찌 그리 삶의 유쾌와 신산함, 슬픔과 연민을 일찌감치 깨우쳤을까요. 인생이 우리에게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건네준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요.
백 년 전의 작가가 살아본 적 없는 나이를 지나고 있는 저로서는, 여태 잘 모른다는 것이 의아할 지경입니다. 왜 어떤 삶은 내내 불씨를 품고 사는지, 언제라도 그것을 던질 준비를 하는지, 기어이 던졌다 여겨야 견딜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포기해버리는 순간, 창가에 어른거리는 희미한 그림자가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이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하고 모호하고 불확실한 와중에도, 낙담하고 환멸스러운 와중에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한탄을 하더라도, 언제나 삶 쪽을 향해 걷고, 아름다움을 보려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소설 쓰는 일이란 어떤 삶을 겨우 떠올려 보는 것이기에, 쓰는 일을 두고 힘들다거나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쓰는 일을 신화로 여기지 않고 성실히 노동하되, 실패를 말로 근사하게 보태지 않는 묵묵한 작가가 되겠다고도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다짐도 소용 없이 소설을 쓰며 매번 스스로에게 실망을 겪는 탓에 부끄럽고 자신 없어 얼마간 쓰지 못했습니다. 쓰는 동안 한탄과 자학, 변명과 포기를 참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더는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방석에서 피를 토하며’ 글을 쓰는 와중에도 ‘발랄하게’ 살아갔다는 백 년 전의 작가를 떠올리며, 쓰는 일에 진지하되 삶의 낙관과 명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인생의 태도, 쓰는 일의 진지함을 알려준 백 년 전의 선배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미숙한 이해와 궁리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온전히 쓸 수 없어 자신 없고 낙담했던 순간을 이해하고 받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의미와 허무, 실망과 기쁨을 넘나들면서도 여전히 쓰고 있는 동료 작가들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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