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행사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행사를 통해
김유정 선생을 추모하고 마음에 담습니다.

김유정문학상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국수력원자력(주)한강수력본부와 김유정문학상운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2007년부터 시작된, 한국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문예지 및 단행본을 통해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하여 매년 1회 시상하고 있으며,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전승과 한국소설문학의 새 지평 열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12회 한강 (2018년 수상자)

  • 김유정기념사업회
  • 2020-06-18 08:57:00

  단편소설 「작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심사평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본심은 총 20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개별 작품들에 대한 검토를 거쳐 다시 5편의 작품을 선별하였다. 해당 작품은 박민규의  <마리, 누나와 나>, 윤성희의  <여섯 번의 깁스>, 편혜영의  <후견>, 한강의  <작별>, 한유주의  <강원도식 결말>(저자 이름의 가나다 순)이다. 환경오염과 지구 최후의 모습들, 삶에서 반복되는 것과 반복되지 않는 것, 소멸하는 존재의 윤리학, 일상의 미시 권력의 억압과 역설, 삶의 가능성을 찾아나선 도박 같은 여행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한편씩 읽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세밀한 토론을 거쳐 한강의 <작별>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작 <작별>은 겨울의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고 보니 눈사람이 되어 버린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품의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자고 일어나 보니 갑충이 되어 있었던 F. 카프카의 <변신>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작품인 동시에, 작가가 이전의 작품들 <내 여자의 열매>나 <채식주의자> 등에서 보여준 변신에 관한 서사와 그 맥이 닿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일찍 이혼을 하고 고등학생인 아들과 살고 있다.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녀가 눈사람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명료하지 않지만, 그녀의 삶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의 위치로 그녀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던 것은 분명하다. 사직을 권유받은 후 그녀는 사물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었고 사물처럼 지하철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사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일까. 눈사람이 된 그녀는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마취주사를 맞은 듯 둔감해진 감각과 심장 부근에서부터 녹아내리는 자신의 육체를 느낀다. 그녀는 연인과 가벼운 키스를 하고,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고, 남동생에게 연락을 한다. 그 과정에서도 그녀는 조금씩 부스러지고 조금씩 녹아내린다. 눈사람의 운명은 녹아서 사라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눈 사이의 공기층이 빠져 나가기에 냉동창고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형체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녀가 소멸의 운명 앞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소멸이라는 운명을 운명에 대한 사랑(amour fati)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녀는, 그리고 소설 <작별>은, 묻는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라고.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작별>의 의미가 조금은 명료해지지 않을까. 소멸이라는 사건을 미분해서 존재와 소멸의 경계들을 보여주는 일. 소멸(사라짐)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눈사람이 되어버린 어느 여성에 관한 황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한 꺼풀씩 벗겨 나가며 인간과 사물(눈사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 놓은 작품.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지만,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이 작품에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부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로 우리를 인도해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 오정희(소설가), 전상국(소설가), 김동식(문학평론가)

 

수상소감

이 소설은 ‘작별’ 인사인데,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소설을 쓰기 위해 일년째 매달려 있었던 작년 여름, 갑자기 이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곧 녹아 사라지기 전에 모든 것과 작별해야 하는 사람. 평생토록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왔는데,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뜨겁고도 서늘한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 그녀는 녹아 사라졌지만, 아직 녹지 않은 저는 그 질문들을 지금도 끌어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천천히,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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